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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제국주의와 전염병>

04. 식민지의 세탁부, 전염병 연구에 핵심 역할을 했으나 역사에서 누락되었다.

by BOOKCAST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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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세탁부무슬림 순례자노예빈민,
전염병 연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역사에서 누락된 사람들

우리는 1830년대에 전염병이 창궐했던 알렉산드리아 같은 도시들로부터 지중해 몰타 섬으로 여행을 와 격리된 사람들의 더러운 리넨(옷, 침대시트, 수건 등)을 빨았던 세탁부가 누구였는지 모른다.


다만 그 세탁부가 당시 영국이 지배하던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 살았다는 것은 안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공원 근처에서 살았을 것이다. 지중해 해상교통의 요충지인 몰타에 정박하는 배를 탔던 승객들은 유럽으로 건너가기 전에 몰타에서 격리돼 검역을 거쳐야 했다. 흑사병에 걸린 적이 있거나 걸렸을 것이라고 의심되는 승객들은 “불완전건강증명서(foul bill of health)”를 받고 오랫동안 격리 수용됐다. 선원 일부가 배에 남아 있는 동안 대다수 승객들은 하선해 몰타의 가장 큰 항구 근처 작은 섬에 들어선 대형 석조병원과 격리시설에 머물렀다.

몰타의 세탁부는 배에서 나온 더러운 리넨을 받아 세탁했고, 승객들과 함께 격리병원에서 검역을 거쳤을 것이다. 눅눅한 지하실에서 일하면서 큰 통에 리넨을 삶기 위해 여러 번 양동이로 물을 길어오고 장작을 한 아름씩 날랐을 것이다. 얼룩과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밤새 옷을 물에 삶은 다음날 아침에는 천을 비벼 빠는 고된 일을 했을 것이다. 혈흔을 제거하기 위해 알코올을 사용하고, 기름때를 없애기 위해 분필과 파이프 점토를 썼을 것이다. 표백제로는 소변을 이용하고, 포푸리(말린꽃, 나뭇잎을 섞은 방향제)를 옷에 뿌렸을 것이다. 이렇게 세탁한 옷을 지중해의 햇살 아래 말리기 위해 밖에 널었을 것이다.

몰타의 세탁부들은 수십 년 동안 더러운 리넨을 세탁하는 이 과정을 반복했다. 1830년대 몰타의 격리병원에서 일했던 조반니 가르친은 이들의 세탁 과정, 노동 그리고 건강상태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가르친은 세탁부들이 더러운 리넨을 계속 만졌음에도 자신이 격리병원에서 일하는 29년 동안 흑사병에 감염된 세탁부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이 내용은 영국의 의사 아서 홀로이드가 격리의 필요성을 반박하는 논문을 쓰면서 인용한 것이다. 더러운 리넨을 만진 세탁부들이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흑사병이 전염성이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홀로이드가 제시한 증거 중 하나였다.

이 논문은 당시 영국 상원의원 신분으로 다양한 개혁을 이끌었으며 인도감독위원회 의장이었던 존 캠 홉하우스 경에게 전달됐다. 홀로이드는 이 논문에서 기존의 검역 규정이 불필요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탁부들은 질병이 어떻게 확산하는지(또는 확산하지 않는지) 이해하는 데 자신들이 도움을 줬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세탁부들이 누구였는지, 검역시설에 들어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감염된 배에서 나온 리넨을 세탁하는 것을 두려워했는지는 그들을 관찰한 사람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홀로이드의 논문에서 세탁부들에 대해 언급한 대목은 2쪽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언급은 흑사병이 전염된다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약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증거들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있었던 검역 논쟁에서 드물지 않게 제시됐다. 전염병에 관한 의사와 검역관들의 보고서에서 이런 증거들은 간단한 문장으로, 문장 속에 살짝 언급되는 형태로, 괄호를 이용한 주석 형태로, 어려운 의학용어 형태로 제시됐다. 세탁부, 무슬림 순례자, 선원, 빈민 같은 사람들이 의학계와 정부가 질병 확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고위 관료들은 이런 소외된 사람들의 이름을 알려 하지 않았고, 이 사람들이 질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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