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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2

02. 흑인 노예들의 역사가 서리다 16세기로 접어들면서 유럽인들은 대서양 서쪽의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해나갔다. 그러면서 점차 늘어난 설탕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대서양의 마데이라제도, 카리브해의 아이티섬과 남미의 브라질을 비롯해 아메리카 지역에 사탕수수 재배 농장을 세웠다. 이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주로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흑인 노예들이었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붙잡아 노예로 부렸으나, 원주민들은 유럽인이 옮기는 전염병에 약해 많이 죽은 데다가 그들의 고향과 가까운 탓에 걸핏하면 도망치는 식으로 저항했다. 이에 유럽인들은 전염병에 잘 견디면서 도망칠 우려가 없는 먼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로 붙잡아 와서 부리는 방식을 택했다. 대략 1500년에서 1880년까지 최대 4천만 명의 흑인들이 노예선에 탄 채로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2022. 5. 31.
01. 이슬람 문화권의 설탕 사랑 설탕은 서기 600년대 후반부터 지중해 세계를 지배한 이슬람제국 시절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아랍인들은 설탕을 매우 좋아해, 사탕수수 재배가 가능한 이집트, 페르시아, 시리아, 크레타섬 등지에 설탕 제조 공장을 세웠다. 서기 1천 년 무렵, 아랍인들에 의해 크레타섬의 도시 칸디아(오늘날의 이라클리온)에 대규모로 설탕을 정제하는 공장이 들어섰다. 아랍인들이 지배하는 지역마다 설탕을 생산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은 제품은 이집트산으로 여겨졌다. 아마도 나일강을 낀 비옥한 토지로 풍족한 양의 곡식이 생산되는 환경 덕분에 설탕의 맛과 품질도 좋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실패한 설탕의 대량 생산을 어떻게 아랍인들이 성공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지중해 지역의.. 2022.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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