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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가루전쟁>

01. 이슬람 문화권의 설탕 사랑

by BOOKCAST 2022.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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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은 서기 600년대 후반부터 지중해 세계를 지배한 이슬람제국 시절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아랍인들은 설탕을 매우 좋아해, 사탕수수 재배가 가능한 이집트, 페르시아, 시리아, 크레타섬 등지에 설탕 제조 공장을 세웠다. 서기 1천 년 무렵, 아랍인들에 의해 크레타섬의 도시 칸디아(오늘날의 이라클리온)에 대규모로 설탕을 정제하는 공장이 들어섰다. 아랍인들이 지배하는 지역마다 설탕을 생산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은 제품은 이집트산으로 여겨졌다. 아마도 나일강을 낀 비옥한 토지로 풍족한 양의 곡식이 생산되는 환경 덕분에 설탕의 맛과 품질도 좋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이 실패한 설탕의 대량 생산을 어떻게 아랍인들이 성공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지중해 지역의 날씨가 사탕수수를 재배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다가 아랍인들이 지중해를 지배한 서기 7세기 이후 지중해 지역의 기후가 점차 무더워지면서 사탕수수 재배에 알맞게 변하지 않았을까.

로마인들처럼 아랍인들도 설탕을 풍요의 상징으로 여겼고, 이집트를 다스린 술탄(이슬람교 국가 군주의 호칭)들은 자신이 사는 궁전 앞에 설탕으로 만든 야자나무 모형을 만들어 전시했다. 값비싼 설탕을 커다란 모형으로 만들 정도로 자신에게 재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설탕에 대한 아랍인들의 사랑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설탕으로 만든 과자도 즐겨먹었는데, 11세기 페르시아의 학자 이븐 시나는“ 설탕 과자는 모든 병을 고치는 약”이라고 단언할 정도였다. 또한 무자비한 투르크족 군벌인 티무르를 만나러 간 역사학자 이븐 할둔은 그에게 설탕 과자를 선물로 바쳐 환심을 샀다.

설탕을 만드는 과정에서 파생된 제품이 지금까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간식으로 즐겨 먹는 캐러멜이다. 캐러멜은 아랍어로 ‘달콤한 소금으로 만든 공’이라는 뜻의‘ 쿠라트 알 밀’에서 유래했다. 아랍인들은 설탕과 캐러멜을 만들어 세계 각국에 수출했는데,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었는지“ 설탕은 아랍인들이 생산하는 금과 같다”는 말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반면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유럽인들은 설탕을 맛보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서기 1097년부터 시작한 십자군전쟁 때, 중동으로 쳐들어간 십자군이 설탕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꿀벌을 이용해 힘들게 얻어낸 꿀이 아니면 단맛을 맛볼 수 없던 유럽인들은 설탕의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1099년 2월, 십자군은 동맹을 제안한 이슬람 세력 트리폴리공국에 사절단을 보냈다가, 그곳에서 설탕을 만드는 작물인 사탕수수 농장을 보았다. 이에 설탕을 얻을 수 있다는 욕심에 트리폴리공국의 동맹 제안을 무시한 채 2월 14일 트리폴리공국으로 쳐들어갔을 정도다. 당시 중동에서는 정치적 내분이 극심해 각 지역마다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어 서로 다투고 있었던 터라, 개중에는 트리폴리공국처럼 십자군과 손잡으려는 집단도 있었다. 그런데 십자군은 설탕을 얻는 재료를 보자마자 동맹 제안을 뿌리치고 다짜고짜 전쟁을 걸어왔을 만큼 설탕을 중요시했다.

십자군의 공격은 3월 13일에 격퇴되었으나 그로부터 9년 후인 1108년 십자군은 다시 트리폴리공국을 침공했다. 트리폴리공국의 수도인 현재 레바논의 도시 트리폴리는 1년 동안 십자군에 포위당했고, 통치자와 주민들이 거세게 저항했지만 1109년 7월 12일 십자군에 함락 당하고 말았다. 10년 동안이나 트리폴리를 얻기 위해 전쟁을 벌일 만큼 십자군은 설탕에 집착했다.

 

설탕을 불에 익혀 만드는 캐러멜. 아랍인들이 해외로 수출한 유력한 상품이었다.
 


그로부터 182년 후인 1291년, 중동 본토의 십자군 요새 아크레가 이집트 군대에 함락되자 십자군은 키프로스섬으로 철수했는데, 그때도 사탕수수를 가져가 어떻게 해서든 설탕을 보존하려 했다. 이 노력은 성공을 거둬, 키프로스섬은 오랫동안 유럽에 설탕을 공급하는 공장 역할을 했다.

특히 1489년부터 키프로스섬의 지배권이 십자군 세력인 예루살렘왕국의 뤼지냥 왕가에서 베네치아공화국으로 넘어가면서 키프로스섬의 설탕 산업은 더욱 발전했다. 작은 도시국가였던 베네치아공화국은 설탕 판매로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고, 지중해를 지배하던 대제국 오스만(현재 터키의 전신)에 맞설 만큼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키프로스섬의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만든 설탕을 고스란히 빼앗아 그들끼리만 독차지하는 베네치아에 큰 불만을 품었다. 게다가 베네치아인들은 키프로스의 원주민을 혹독하고 억압적으로 다스렸다. 1571년 베네치아의 적대국인 오스만제국 군대가 키프로스섬에 상륙하자, 섬 주민들은 베네치아에 대한 원한을 풀기 위해 오스만 군대에 적극 협조했고, 베네치아의 지배를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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