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전쟁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유럽 사람들은 후추의 원산지인 인도를 동경하며 가고 싶어했다. 서기 600년대 유럽 사람들은 인도의 후추나무는 사나운 뱀들이 지키고 있어서 후추를 가지러 온 사람을 물어 죽이며, 후추를 수확하려면 후추나무에 불을 질러 뱀들을 쫓아내야 하고, 그래서 후추가 검은색이라고 여겼다. 이는 후추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왜곡된 이미지를 통해서라도 그들이 후추를 얼마나 갖고 싶어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유럽 사람들의 열망에 불을 지핀 책이 13세기 말엽 중국 원나라에 다녀왔던 여행가이자 상인 마르코 폴로의 회고록 《동방견문록》이었다. 이 책에서 마르코 폴로는 중국 남부의 항구 도시인 항저우에 매일 10만 파운드 무게의 후추가 무역선에 실려 들어오며, 그 양은 인도에서 이집트로 수입되어 오는 후추의 양보다 100배나 많다고 기록했다.
이 책은 일부 사람들로부터 “너무 지나친 과장이다. 그는 허풍을 너무 떨었고, 도저히 믿지 못할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고 혹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100종의 다른 판본이 나올 정도로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방견문록》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을까? 1494년 신대륙에 도착한 것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의 탐험가 콜럼버스도 이 책을 자주 읽으면서, 후추가 자라는 머나먼 신비의 나라 인도와 그 인도산 후추가 매일 10만 파운드가 무역선에 실려 들어온다는 풍요로운 나라 중국에 가려는 꿈을 품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거칠고 험한 파도가 휘몰아치는 대서양을 건너 마침내 신대륙에 도착했다. 실제로 그는 유럽의 서쪽 바다로 계속 가면 인도와 중국이 나온다고 믿었고, 항해할 때에 《동방견문록》에 적힌 중국의 통치자 칸에게 보내는 편지를 품에 간직하고 있었다.
아울러 그는 신대륙을 네 번이나 탐험해 쿠바와 에콰도르, 파나마 등지에 도착하고 나서도 죽을 때까지 자신이 디딘 땅을 인도의 일부라고 믿었다. 이는 그만큼 그에게 인도에 가서 후추를 가득 얻어 일확천금을 누리려는 욕망이 컸음을 보여준다. 후추에 대한 열망이 그를 신대륙으로 이끌었고, 그가 탐험한 신대륙으로 인해 세계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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