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럽의 역사에서 밀과 관련된 무역 때문에 전쟁까지 벌어진 경우도 있었는데,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이 그것이다.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은 1806년 11월 21일, 대륙봉쇄령을 발표했다. 이 대륙봉쇄령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유럽의 모든 나라는 영국에 어떤 상품도 팔거나 어떤 영국 상품도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폴레옹이 이런 대륙봉쇄령을 발표한 것은 영국 때문이었다. 대륙봉쇄령을 발동할 무렵 유럽에서 나폴레옹에게 맞설 적수는 영국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군사력으로 제압하기가 불가능했다. 영국은 유럽 본토와 육지로 연결된 나라가 아니라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여서 영국을 정복하려면 해군이 필요했다. 문제는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해군의 장군과 장교를 이루고 있던 프랑스 귀족들은 “귀족들을 모두 잡아 죽이자!”라는 혁명 구호에 겁을 먹어 외국으로 도망쳤다. 그래서 나폴레옹전쟁 동안 프랑스 군대는 육지에서는 무적이었으나 바다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나폴레옹은 세계 역사상 보기 드문 전쟁의 천재였고, 그가 지휘하는 프랑스 육군은 당시 유럽의 모든 나라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군대였다. 하지만 아무리 나폴레옹이 막강한 육군을 거느렸다고 해도 영국을 굴복시키려면 바다를 건너 영국에 군대를 상륙시켜야 했다.
프랑스에는 육군을 배에 태우고 영국에 보낼 수송 선단과 그 선단을 보호해 줄, 제대로 된 해군이 없어서 도저히 영국을 정복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원정을 해도 영국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던 프랑스 해군조차 1805년 트라팔가르해전에서 영국 해군에 모조리 전멸당하고 말았다.
나폴레옹은 고심 끝에 영국을 경제적으로 붕괴시키기 위해 자신이 지배하던 유럽의 모든 나라들에 대륙봉쇄령을 명령했다. 만일 대륙봉쇄령을 어기면 나폴레옹 자신이 직접 프랑스군을 이끌고 그 나라로 쳐들어가 응징할 것이라는 엄포까지 덧붙였다.
대륙봉쇄령은 시작부터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유럽 국가들이 영국과 무역을 하지 말라는 나폴레옹의 말에 따를 수 없다고 아우성쳤다. 이 항의에 나폴레옹은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상품 시장을 잃어버린 영국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내게 무릎을 꿇고, 무역을 다시 하게 해달라고 애걸할 것이다. 그러면 그때, 그대들이 입은 피해는 다 되찾을 것이다”라고 달랬다.
나폴레옹이 잊어버린 사실이 있었다. 대륙을 봉쇄한다는 소식을 들은 영국 정부는 오히려 강력한 해군을 동원해 유럽 각국의 항구를 봉쇄하는 한편, 북미 대륙과 인도를 상대로 한 무역으로 대륙봉쇄령 때문에 입은 손해를 보충했으며, 이런 식으로 나폴레옹에 맞섰다.
영국이 이렇게 나오자 유럽 국가들은 영국과 무역이 끊겨 가난에 시달린다며 나폴레옹에 대한 불만을 품었다.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으로 경제적인 타격을 입은 유럽 나라들에 어떠한 보상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위해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고, 무조건 명령하는 대로 복종하라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나폴레옹에게 호감을 가질 나라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폴레옹에게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한 나라가 나타났다. 러시아였다. 대륙봉쇄령이 있기 전에 러시아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밀 같은 곡물들을 대부분 영국으로 수출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을 선언하자 러시아는 명령에 따랐는데, 당시 러시아는 프랑스의 동맹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영국이 나폴레옹에게 무릎을 꿇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에 러시아 경제는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대륙봉쇄령에 따라 영국으로의 밀 수출을 금지하자, 이에 따른 손해의 보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나폴레옹 본인이 러시아의 밀을 영국 대신 사주는 식의 도움조차 주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러시아 국내에서는 더 이상 자국 경제를 망치고 있는 나폴레옹과의 동맹을 이어가봐야 소용없으며, 차라리 영국에 밀 수출을 다시 시작해 경제적 이득이라도 챙기자는 반발 여론이 강해졌다. 이에 경제적 피해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러시아는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영국에 계속 곡물을 팔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발각되자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어긴 러시아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여겨, 프랑스와 다른 동맹국들의 군대로 이루어진 60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러시아를 굴복시키려는 원정을 나섰다.
1812년, 유럽 각국에서 차출한 60만의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로 쳐들어간 나폴레옹은 그러나 러시아의 광대한 국토와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다 철수했다. 나폴레옹이 이끌고 간 병력의 대부분은 고향으로 도망쳤거나, 러시아에 항복하거나, 아니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나폴레옹이 야심차게 추진한 러시아원정의 실패 소식이 알려졌다. 유럽 각국은 나폴레옹이 약해졌으니 이제 그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나폴레옹과 맞서 싸웠고, 결국 라이프니치전투와 워털루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쫓겨나 몰락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영국으로 수출되는 러시아의 밀을 막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가 나폴레옹이 망했으니, 밀로 인해 유럽과 세계 역사가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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