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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2

03. 조선의 동성애 - 궁녀의 대식(對食), 남색(男色)을 하는 양반, 남사당패, 승려들 궁녀들의 동성애 조선 중기까지도 성 풍속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왕실과 공신들의 스캔들 못지않게 끊임없었던 것이 궁녀들의 성 추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궁녀들 간의 동성애는 구한말까지도 계속되었다. 궁녀의 동성애를 대식(對食)이라 하였는데 원래는 궁녀들이 가족이나 친지를 궁궐 안으로 불러들여 같이 식사하는 제도였다. 그런데 그것이 변질되어 동성애의 기회로 삼았기 때문에 대식이라 하였다. 조선 초에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은 문종의 2번 째 부인인 세자빈 봉씨의 폐출이었다. 『세종실록』 18년(1447)10월 26일자에 그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봉씨가 궁궐의 여종 소쌍을 사랑하여 항상 그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니, 궁인들이 혹 서로 수군거리기를, “빈께서 소쌍과 항상 잠자리와 거처를 같이 한다.”고 하.. 2022. 11. 16.
01. 고려인의 개방적인 성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이나 이나 이라는 고려가요 등을 통해 당시의 성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에서는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웠으며 남녀 혼욕 풍습까지 있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한 후 집을 나서며,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한다. 흐르는 시냇물에 많이 모여 남녀 구별 없이 모두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 따라 속옷을 드러내는 것을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 『고려도경(高麗圖經)』 또한 ‘경합이리(輕合易離)’라고 하여 “가볍게 만나서 쉽게 헤어진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을 정도로 고려인들의 성 풍습도 자유분방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의 태조 왕건(王建)은 지방 호족들과 혼인관계로 동맹을 맺어 .. 2022.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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