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이나 <쌍화점(雙花店)>이나 <만전춘(滿殿春)>이라는 고려가요 등을 통해 당시의 성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에서는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웠으며 남녀 혼욕 풍습까지 있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한 후 집을 나서며, 여름에는 하루에 두 번씩 목욕을 한다. 흐르는 시냇물에 많이 모여 남녀 구별 없이 모두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 따라 속옷을 드러내는 것을 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 『고려도경(高麗圖經)』
또한 ‘경합이리(輕合易離)’라고 하여 “가볍게 만나서 쉽게 헤어진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을 정도로 고려인들의 성 풍습도 자유분방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의 태조 왕건(王建)은 지방 호족들과 혼인관계로 동맹을 맺어 29명의 부인을 두었고 왕권의 안정을 위해 근친혼의 길을 열어 놓았다. 왕건의 넷째 아들 왕소는 이복 여동생 황보씨와 결혼하고 두 번째 부인은 조카였다. 6대 성종은 광종의 딸인 문덕왕후 유씨와 결혼하였는데 유씨는 먼저 태조의 손자인 왕규와 결혼한 적이 있으니 재혼을 한 셈이었다. 고려시대 왕으로 동성애를 한 경우는 여럿 있었다.
다음은 목종과 유행간의 관계를 기록한 내용이다.
유행간(庾行簡)은 그 생김새가 아름다워서 목종이 특히 그를 사랑해 용양(龍陽,남색)의 관계를 맺었다. 합문사인(閤門舍人)으로 벼락출세시켜 놓고 왕이 교지를 내릴 때마다 반드시 유행간에게 먼저 물은 다음에 시행하였다. 이 때문에 총애를 믿고 교만하게 굴면서 관료들을 업신여기고 제멋대로 부리니 측근 신하들은 그를 왕처럼 대우하였다.
- 『고려사』 권36, 「열전」 폐행 유행간
한편 고려 왕실의 성 스캔들은 고려 최초로 섭정을 한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사통 사건이었다. 천추태후는 5대 경종의 후비이자 6대 성종의 여동생이고 7대 목종의 친모 그리고 8대 현종의 이모였다. 천추태후는 목종이 즉위하고 대비가 되자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아 왕으로 만들려고 하였다.
『고려사』 「김치양 열전」에는 그가 천추태후의 어머니쪽 친척이며 천추태후 사이에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하였다.
김치양은 동주(同州) 사람이며 천추태후(千秋太后) 황보(皇甫)씨의 외족(外族)이었는데 성정이 간교하고 성욕이 몹시 강했다. 김치양은 일찍이 머리털을 깎고 가짜 중이 되어 천추궁(千秋宮)에 출입하면서 추악한 소문이 자자하였으므로 성종(成宗)이 그것을 확인하고 곤장 쳐서 먼 곳으로 귀양 보냈다......목종이 항상 그를 내보내고자 하였으나 모친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염려하고 단행하지 못하였다. 후 태후가 아들을 낳았는바 그것은 김치양과 간통하여 낳은 것이었다.
- 『고려사』 127권, 「열전」 40, 반역 김치양
그러나 강조(康兆)의 변이 일어나 목종은 폐위되고 김치양과 아들도 죽게 된다.
한편 천추태후의 여동생 헌정왕후는 그 역시 5대 경종에게 시집을 갔다 과부가 되자 왕건의 아들이면서 숙부인 왕욱과 통정하여 아이를 낳았으니 그가 8대 현종(顯宗,991~1031)이다.
고려 말 충선왕은 원충과 동성애 관계로 『고려사』 권20, 「열전 제신 원충」을 보면 18살에 충선왕의 부름을 받아 옛날 용양(龍陽)처럼 남색(男色)으로 총애를 받아 왕씨(王氏)성을 하사받고 이름을 왕주(王鑄)로 고쳐 받았다고 되어있다.
공민왕의 동성애 기록을 보면 천성적으로 여색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나 남색을 밝힌 것도 모자라 난잡한 행동을 하였다고 전한다.
항상 자신을 부인 모양으로 화장했다. 먼저 젊은 여종을 방안에 불러들여 보자기로 얼굴을 가리고 김흥경과 홍륜 등을 불러들여서 난잡한 행동을 하게 해놓고, 왕은 곁방에서 문틈으로 엿보았다.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홍륜 등을 침실로 불러들여서 마치 남녀 사이와 같이 자기에게 음행을 하게 했다. 이렇게 하기를 수십 명을 바꾸고서야 그쳤다.
- 『고려사』 권43 「세가」공민왕 21년
고려 때 동성애에 대한 기록 중 눈에 띄는 것은 문인 이규보(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에 나타난 한시 <차운공공상인 증박소년오십운(次韻空空上人 贈朴少年五十韻)>이다. 고승과 미모와 재주를 가진 소년의 사랑 이야기였다.
하늘과 땅이 개벽하매 음과 양이 생기고
수컷이 암컷을 부르자 여가 남을 따르네!(1연)
더욱이 이 소년은 총명한 천성에다
해박한 학식까지 마냥 간직하여
마치 봄철의 윤택한 숲 같고
또한 둥근 보름달과도 같네!
침실에 이불을 함께 하니 정의가 진실로 도탑고
서로 사랑한들 무엇이 해로우랴 (5연)
공공상인(空空上人)은 이규보와 교유가 깊었던 경조(景照)라고 하는 당대 고승인데 속세와 인연을 끊고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도 물리쳤다고 한다. 그런데 박씨 소년을 만나 사랑을 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마치 고대 그리스에서 성인 남자와 소년의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육체적인 관계 이전에 정신적인 교감이 이루어져 연대감이 사랑으로 이어졌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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