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4년에 발표한 폴린 레아주의 『O 이야기』는 프랑스 현대문학에 큰 충격을 주었다.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한 ‘되 마고 상(Prix des Deux Magots)’을 수상하면서 일약 화제가 된 이 소설은 포르노라는 비판과 찬사의 상반된 입장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그 중 『에로티즘』의 저자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1897~1962)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이 작품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O가 처한 역설적 상황은 ‘죽지 않으려고 죽어가는(mourir de ne pas mourir)’ 환상 광인의 상황과 유사하다. 그것은 곧 사형집행인이 희생자와 공모하는 순교의 현장과도 같다. 스스로 몸을 찢어, 에로티시즘의 환상을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가장 거대한 환영 속으로 녹여내는 가운데, 순교자의 내부에서 용솟음치는 언어의 분출을 우리는 이 책에서 확인한다.
- 조르주 바타이유
『O 이야기』는 적나라한 성애 장면과 함께 남성들의 성적 욕망에 순응하는 듯한 여주인공의 태도와 묘사로 포르노 혹은 사도마조히즘(sadomasochism: 타인을 공격해 쾌락을 얻는 사디즘(sadism)과 타인에게 공격당하면서 쾌락을 얻는 마조히즘(masochism)이 혼합된 용어)의 소설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성적 욕망을 자극하기보다는 인간의 욕망, 여성이 갖는 성적 판타지를 통한 쾌락과 환희 등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서사는 단순하다. 미모의 20대 여성인 사진작가 O가 애인인 르네와 함께 로시의 성에 가고, 그곳에서 르네의 부탁으로 여러 남자들에게 성관계를 하게 되고 나중에는 르네에게 소개받은 스테판을 따라 사무아라는 곳에서 채찍질과 겁탈을 당한다. 그리고 O의 목에는 개줄이 묶여 가면을 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춤을 추고 공개적으로 누구와도 섹스할 수 있는 여자가 되어 버린다. 애인에게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선택으로 그녀의 육신은 공유물로 전락한 듯 보였으나 O의 내면은 그러한 상황을 냉정하게 관조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르네가 채찍질을 가하고 매춘을 시키는 건 O로서는 그저 행복한 일이었다. 열정적으로 나를 내던짐으로써 애인의 소유임을 증명할 수 있는 데다 채찍질의 고통과 수치는 물론, 내 몸을 유린하면서 쾌락을 강요하는 자들의 횡포를 통해 결국 그 간의 죄가 상쇄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능욕을 당한다지만, 아니 오히려 능욕을 당하고 있기에, 바로 그 능욕을 통해 가치를 인정받는 데서 오는 일종의 감미로움이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 굴복을 자처하기에 느끼는 기쁨, 자신을 순순히 개방함으로써 얻는 즐거움 같은 것 말이다.
하느님이 주는 시련을 신자들이 오히려 감사해 하듯, 그녀는 자신을 함부로 취급하는 걸 즐기는 걸 즐기는 애인의 뜻을 충실히 배려하면서 마냥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몸을 함부로 내돌림으로써 존엄해진다는 것은 분명 놀랄 현상이나, 거기 존엄한 무언가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 얼굴에선 알 수 없는 고요함과 더불어 은자들의 눈빛에서나 떠오를 법한 내면의 미소가 은은하게 번지는 것이었다.
O는 르네에 대한 사랑이라는 욕망에서 출발하여 충동으로 나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에 따르면 욕망은 충동을 포괄하는 개념이고 충동은 주체의 삶의 역사와 함께 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대상과 관계를 가질 수 있다. 충동은 인간을 사유하게 하고 다양한 단계들로 밀어 넣거나 빠져 나가도록 하는 힘이다. O가 르네의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충동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O에 대한 의미는 ‘구멍(orifice)’, ‘오브제(objet)’, ‘희생물(offrande)’, ‘복종(obéissance)’, ‘오르가슴(orgasme)’ 등 해석이 다양하다.
『O 이야기』에는 사디즘, 마조히즘 등 온갖 성행위가 나오지만 작가는 여주인공의 심리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소설에서 애인인 르네나 스테판 경이 마치 성(性)의 지배자 혹은 가해자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들은 여주인공에게 타자(他者)로서 존재할 뿐이다. 모든 선택은 그녀에게 있었던 것이고 O는 성에 대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워 놓은 듯 묘사되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알몸으로 춤을 추는 O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몸을 피사체로 여기고 있었기에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고 보인다. 그녀의 직업이 사진작가로 설정된 것과 사람들이 구멍을 통해서 그녀를 본다는 장면은 구멍을 카메라의 렌즈에 은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은 그녀를 훔쳐보는 관음증(觀淫症)으로 성적 만족을 얻는 것 같지만 O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그들의 욕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O는 사람들에게 매춘부라는 이미지로 대상화되었지만 이는 라캉의 ‘자아는 타자他者를 통해 만들어진 허구일 뿐 본성은 아니라는 것이고 보다 본질적인 것은 자아의 억압을 벗어난 무의식의 주체다’라는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훗날 폴린 레아주(본명은 도미니크 오리)는 소설이 자신의 환상이라고 밝혔다.
글쎄요… 제가 아는 건, 그 소설의 모든 것이 저 개인의 순전한 환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성 중심이든 여성 중심이든 그런 건 상관하지 않아요… 그 속에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 그 누구도 O와 같이 다루어지는 걸 견뎌낼 사람은 없지요. 모든 것이 저의 사춘기부터 존재해온 환상일 뿐입니다.
환상(幻想)에 대해 프로이트(Sigmund Freud,1856~1939)는 ‘무의식의 욕망을 무대화하는 어떤 장면을 가리킨 것’이라 보았고 라캉(Jacques Lacan,1901~1981)은 ‘주체는 환상을 통해 그의 욕망을 유지할 수 있는 동시에 욕망을 사라지게 하는 차원에서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 있게 된다.’라고 하였다. 또한 영국의 정신분석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 1882~1960)은 환상을 본능의 정신적 표현이라고 정의하며, 유아기부터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환상은 무의식적 정신생활의 주요 요소로 생각되며, 일차적 과정, 즉 환각적 소원 성취를 직접적으로 반영한다는 것이다. 결국 환상은 욕망을 향한 장치이며 작가는 『O 이야기』를 통해 성적으로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당대에는 포르노라는 오명을 받았지만 훗날 에로티즘 문학의 전설로 평가되었다. 『O 이야기』는 서사의 줄거리만 본다면 여성이 피학적(被虐的) 존재로 보여질 수 있으나 O의 모험이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모든 행위의 주체가 여성인 O였음을 의미한다. 또한 여성이 남성의 종속적인 존재로 인식되었던 1950년대에 여성의 성적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다는 것은 여성주의 관점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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