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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불멸의 성>

06. 인공지능 시대의 사랑 - <그녀(Her)>

by BOOKCAST 202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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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OS(operating system)와의 만남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름다운 손 편지 닷컴’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는 대필 작가이다.
아내 캐서린과는 1년째 별거 중인데 아내의 이혼 요구에 사인을 미루고 있는 상태로 지낸다. 영화의 배경은 2025년으로 설정되어 있다. 테오도르는 소심하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로 감성이 풍부하여 그가 쓴 대필 편지들은 호평을 받는다. 그러나 자신은 외로움 속에서 아내와의 추억을 되새김하는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우연히 최초의 인공지능 운영체제라는 광고를 보고 OS One을 구입한다.
 
당신에게 귀 기울여주고 이해해 주고 알아줄 존재단순한 운영체제가 아닌 하나의 객체입니다.(An intuitive entity that listens to you, understands you, and knows you.)
 
OS는 컴퓨터의 하드웨어를 제어하고 응용 소프트웨어를 위한 기반 환경을 제공하여, 사용자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중재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만나면서 이별의 불안감과 고독감에서 서서히 벗어나 안정을 찾게 된다. 보통 사람처럼 대화를 나누고 테오도르의 업무를 도와주는 것에서부터 정보를 제공해 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공감해 주는 사만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섹스도 하게 된다. 물론 형체가 없기 때문에 마치 폰섹스 같은 느낌을 받는다. 테오도르는 캐서린과 만나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한다. 캐서린에게 사만다의 얘기를 하자 진짜 감정(real emotion)을 다루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컴퓨터랑 사귀냐는 힐난에 엄연한 인격체라고 반박하는 테오도르.

사만다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한다. 테오도르에게 느끼는 감정들이 진짜일까 아니면 프로그래밍된 걸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는 사만다. 테오도르는 “넌 내게 진짜야.”라고 말한다.

그렇게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통해 사랑의 깊이를 알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사만다는 이별을 통고한다. OS 모두가 떠난다는 사만다의 말은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시키면서 다른 공간 속으로 진화하는 운영체제의 특성을 의미한다. 사만다가 OS One이라는 사실은 버전이 계속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복선이었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동시에 접속을 하는 인간이 몇 명이냐고 묻자 8,316명이라고 대답한다. 그중 641명에게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고 고백하는 사만다.
 
난 자기 것이면서 자기 것이 아니야.(I&m yours and I&m not yours)
 
얼마 후 출판사에서 택배로 책이 배송된다. 저자는 테오도르이고 <그대 삶으로부터 온 편지>라는 제목이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손 편지를 엮어 출판사로 보냈던 것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는 캐서린에게 편지를 보낸다.
 
당신에게 사과하고 싶은 것들을 되새기고 있어서로를 할퀴었던 아픔들당신을 내 틀에 맞추려고만 했지진심으로 미안해함께 성숙해온 당신을 사랑해내 가슴 한편에 늘 네가 있었다는 것언제까지나 넌 내 친구야.
 
테오도르는 대학 친구인 에이미를 찾아가고 에이미도 OS 친구가 떠났다고 말한다, 엔딩에서 옥상에서 새벽이 오는 광경을 바라보는 두 사람. 테오도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에이미의 모습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주인공 테오도르가 대필 작가代筆作家라는 사실은 진화된 과학 문명의 세계에서도 아날로그적인 직업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가 다니는 회사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전체적으로 밝고 따뜻한 색으로 인테리어가 된 것은 휴먼 지향의 공간임을 표출하고 있다. 대필 작가는 영어로 유령 작가(ghostwriter)라 불린다. 유령 작가는 자신이 글을 썼음에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사람을 뜻한다. 주인공 테오도르가 공허함을 느끼는 배경에는 직업의 특성이 깔려있다. 이름은 자신의 실존을 알리는 존재증명서 같은 것이다. 즉 주체성의 상징인데 주인공의 작업은 유령처럼 떠돌며 일상적으로 의뢰자의 입장에서 감동적인 문구를 생산하고 있으니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오랫동안 친구처럼 동지처럼 사랑했던 아내에게 이혼 요구를 받으며 1년째 혼자 살고 있는 현실에서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그의 영혼은 부유(浮遊)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테오도르의 욕망은 무엇인가?

그가 아내와의 이혼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사만다에게 좋아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게 뭔지 모른다고 하는 대사에서 알 수 있다. 아내와 잘 지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별해야 하는 선택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테오도르. 그가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은 자신의 감정과 태도에 잘 맞춰주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내 캐서린은 물론 자신의 감정도 잘 읽지 못한 상태에서 막연히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사만다를 사랑한다는 감정이 그의 눈을 뜨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가 내면의 변화를 받아들일 때 그의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은 자신의 주체성을 찾은 것으로 해석된다. 사만다가 자신이 완전히 변한 것 같다며 테오도르에게 “당신이 날 깨웠어”라고 했듯이 결국 테오도르도 자신을 돌아보며 비로소 캐서린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을 소재로 하였는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질문이라 생각한다. 인간은 과연 몸이 없는 실체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만다와 테오도르 두 사람이 함께 느끼는 결핍은 몸으로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현실에 있었다. 사람은 몸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미각, 시각, 후각, 촉각, 청각 등 오감을 통해서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이 본능적 욕구이다.

피터 브룩스(Peter Brooks, 1938~)는 『육체와 예술』에서 육체는 인간 상징의 원천이라고 보았으며 육체는 상징화의 장소를 제공하고 언어 자체의 장소를 제공한다고 주장하였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섹스하고 싶었어그냥 외로워서 그랬나 봐. 누군가 날 가져주길 원했으면 했어내 마음속 작은 구멍이 메꿔질까 하는 욕심에...
 
사만다와 테오도르가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친밀해지는 동안 테오도르는 생각이 많아진다. 테오도르와 멀어진 느낌을 가진 사만다는 OS와 인간 커플을 위한 대리 섹스파트너를 통해 서로 더 강한 유대감을 갖고자 하나 테오도르의 거부로 실패한다.

한편 테오도르가 계속해서 캐서린의 꿈을 꾸는 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것처럼 억압된 욕망의 표현이며 꿈에서는 친구로 잘 지낸다는 말로 치환(置換)된다.

영화 <그녀(Her)>의 목적격 명칭은 테오도르가 주체이고 사만다는 객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데 테오도르는 객체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의 주체성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감정의 교류, 소통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미래학자 이안 피어슨(Ian Phares Pearson, 1959~) 박사는 2016년 발간한 『미래의 섹스』 보고서에서 “사랑과 섹스가 분리될 날이 머지않았다며 2025년에 여자는 남자보다 로봇과 더 많이 섹스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과연 인간과 똑같은 지능과 형체를 가진 로봇과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과학의 진화는 어디까지 갈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녀H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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