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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불멸의 성>

07. 『킨제이보고서(Kinsey Reports)』 - 여성의 성 해방을 위한 권리장전

by BOOKCAST 2022.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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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제이보고서』는 1930년대 당시 인디애나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앨프리드 찰스 킨제이(Alfred Charles Kinsey, 1894~1956)가 출간한 성에 대한 보고서로 『남성의 성적 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1948)과 『여성의 성적 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1953)의 2권으로 되어있다.

ʻ인간의 성(性)ʼ이라는 금기시되었던 내용을 주제로 방대한 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하였고 조사 결과가 미국 사회를 충격 속에 빠트렸다.

11,24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는 동성애, 혼전순결, 혼외정사 등 당시에는 쇼킹한 내용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1950년대 미국은 교회의 영향으로 성에 대한 관념이 청교도적이었고 동성애나 자위를 불법으로 간주하던 때였다. 킨제이는 조사 대상 중 4%의 남성이 평생을 동성애자로 일관했으며, 37%의 남성이 쾌락을 동반한 동성애 경험을 최소 1회 이상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해 극소수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동성애에 대한 미국인들의 편견을 깨는데 일조했다.

킨제이가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은 성적 행동에는 특별한 다양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남성 중에는 매일 오르가슴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몇 달 동안이라도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또한 여성 중에도 오르가슴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가슴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자위는 여성의 성(性)에서 중요하다

또한 킨제이의 연구는 성적 적응(sexual adjustment)에서 자위행위의 역할을 재평가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는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지적했다.

자위행위는 해롭지 않으며 성적 쾌감을 주는 분명한 하나의 성적 행동 유형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성과의 성교보다 오르가슴을 좀 더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고, 여성이 성교를 하는 동안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촉진하기 때문에 여성의 성(性)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킨제이의 연구가 나오기 전에는 남성이건 여성이건 어떤 사람이 동성 사람과 어떤 유형의 성적 행동이라도 한 적이 있다면 그 사람을 동성애자로 인식했는데 킨제이는 많은 사람이 양성 모두와 성 경험을 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는 연구에 참여한 남성 가운데 50%와 여성 가운데 28%가 동성 간 섹스를 한 경험이 있고, 남성 가운데 38%와 여성 가운데 13%가 동성과 성경험을 하는 동안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보고했다. 이뿐만 아니라 성적 끌림은 일생 동안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로써 킨제이는 연구를 통해 사람들을 이성애자 또는 동성애자로 단순히 분류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한 사람의 성은 훨씬 더 복잡하고 유동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킨제이는 게이, 레즈비언 또는 이성애자로 분류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의 행동이 동성 간 섹스이고 이성 간 섹스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금기에 해당했던 여성의 성(性)을 직접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매카시즘(McCarthyism)의 선풍이 거셀 때였다.
 

여성도 독자적인 성욕이 존재하며 오르가즘을 느낀다

미국의 1950년대는 사회적 변혁보다는 평화와 안정을 추구했던 보수주의 시대, 즉 가정이 중요시되고 이혼이 거의 없었으며, 동성애가 용납되지 않았고 인종 차별이 존재하던 시대였다. 영화 <플레전트 빌(Pleasantville)>은 1950년 대 미국 사회를 투영시킨 작품이며 이 시기에 성장 소설의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히는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1951)도 당대 사회상을 배경으로 하였다.

한편 종교적 보수주의가 강했던 당시에 청교도적 윤리를 중시한 도덕주의자들은 킨제이를 비도덕적이라 비난하며 경악하였고 그는 매카시즘의 희생양이 되었다.
결국 킨제이는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받은 지원이 끊기게 되었다.
 
킨제이는 기존까지 사회에서 여성의 성욕은 남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의존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킨제이 보고서』는 『인간 여성의 성적 행위』를 통해 여성에게도 독자적인 성욕이 존재하며 오르가즘을 느낀다는 사실을 밝혔다.

『킨제이 보고서』는 사회계층에 따라 성 문화가 다르며, 이성애 및 금욕 생활이 도덕적이고 일반적인 규범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동성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킨제이 보고서』는 미국 남성의 92%, 여자의 62%가 자위행위를 즐기고 있으며 동성애를 한 번 이상 경험한 남성이 37%, 여성이 19%에 이르고 있다고 발표했다.

한편 미 여권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1934~)은 『킨제이 보고서』가 여성의 성해방을 위한 ‘권리장전’이라고 평가했는데 1960년대 성혁명(sexual revolution)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킨제이는 인간의 성행위에 대한 심오한 연구를 통해 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성학(sexology)의 첫 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킨제이보고서』의 영향으로 <플레이보이>가 창간되고, 1953년 창간호에 당대 최고의 섹스 심벌인 마릴린 먼로를 표지 인물로 선정했다. 이는 당시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1974년 래리플린트는 하드코어인 포르노 잡지 <허슬러>를 창간하였다.

흔히 『킨제이보고서』를 마치 섹스에 대한 흥밋거리로 생각하기 쉽지만 성에 대해 최초로 학문의 영역에서 많은 남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서였다. 물론 그의 조사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경우도 있었지만 성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지평을 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킨제이보고서』를 기점으로 성에 대한 학문은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성과학(sexology) 또한 인간의 탐구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한 성에 대한 지식은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며 행복한 삶의 필요충분조건이라 생각한다.

2005년에 킨제이의 실화를 배경으로 <킨제이 보고서>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빌 콘돈 감독은 억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적 욕망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배우고 자란 킨제이가 성인이 된 후 엔지니어의 길을 벗어나 동물학 연구자가 되는 일생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각각의 사람들은 독특한 성적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성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보편적이다’, ‘드물다’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며, ‘정상’, ‘비정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킨제이의 발언은 성에 대한 다양성을 밝히는 동시에 편견을 깨트렸다고 볼 수 있다.
 

영화 <킨제이보고서>,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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