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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지리지2

07. 대구는 일찍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다. 수산왕 가시이 겐타로, 바다를 점령하다 대구를 잡는 전통 어법은 어전이었다. 어전은 조기, 대구, 청어처럼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무리를 이루어 이동하는 어류를 포획하는 어법이다. 지역에 따라 어살 혹은 방렴이라고도 한다. 남해와 사천의 죽방렴도 원래 이름은 ‘경상도 방렴’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처럼 멸치가 아니라 대구나 청어 등을 잡았다. 조선시대에 대구는 거제도 특산물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거제현」에 “토공(土貢: 공물)은 대구어·문어·생포(生鮑: 전복) ·미역·우무(牛毛)·표고버섯·세모(細毛)”라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대구 어장은 백성들이 소유할 수 없었다. 1906년 ‘칙지(勅旨: 대한제국에서 내리는 문서)’를 보면, 거제도·가덕도· 가조도 등 ‘어기(漁基: 어장)’를 의친왕부(義親.. 2022. 4. 12.
04. 조선 시대에는 세금을 조기로 납부했다? 조기로 세금을 납부하다 『세종실록지리지』 「나주목 영광군」에 “석수어(石首魚)는 군의 서쪽 파시평(波市坪)에서 난다. 봄· 여름 사이에 여러 곳의 어선이 모두 이곳에 모여 그물로 잡는데, 관청에서 그 세금을 받아서 국용(國用)에 이바지한다”고 했다. 파시평은 칠산 바다를 말한다. 또 『세종실록지리지』 「황해도 해주목」에도 “토산(土産, 토산물)은 석수어가 주의 남쪽 연평평(延平坪)에서 나고”라고 되어 있어 장소만 ‘연평평(연평도)’이라고 바뀔 뿐 같은 내용이 소개되었다. 두 곳 모두 조기의 주산지였다. 조선시대에 조기는 제수용품, 진상품, 하사품, 약재, 장류, 조세 물품 등 다양한 쓰임새로 나타난다. 『태조실록』 1397년(태조 6) 4월 1일에 “새로 난 석수어를 종묘(宗廟)에 천신(薦新)했다”고 기.. 2022.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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