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화
타인의 아픔을 같이 느낄 순 없을까?
그녀는 주말이 아니면 수요일에 저를 만나려고 합니다. 특히 수요일에는 거의 백퍼센트! 그녀한테 연락이 온다고 알고 있으면 됩니다.
왜냐구여? 그녀는 수요일에 학교수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번 수요일에 그녀가 우리학교에 와서 난장판을 쳐놓고 갔기 때문에 전 수요일에 들어있는 강의는 안 듣습니다. 아니 못 듣습니다. 등록금이 대체 얼만데 ….
돈 아까워 죽습니다.
오늘은 수요일~!
수요일엔 오뚜기 카레~!
아닌감 …?
저는 지금 학교에 가는 걸 일찌감치 포기하고 집에서 대기 중 입니다. 사전에 그녀의 연락은 당근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녀가 저희 집 근처에 와서, ‘일 분 안에 안 나오면 죽는다!!! 라고 하면 전 1분 안에 그녀 눈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형, 수업도 일찍 끝났는데 게임방 가자?”
“오늘 나 집에 일찍 갈래.”
“왜?”
“응, 피곤해서.”
그래서 학교가 파하고 집에서 쉬려고 일찍 집에 들어갔습니다. 집에 와서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그녀한테 전화가 오더군여.
“여보세요?”
“견우야! 난데.”
“응, 왜?”
“나 지금 신도림역인데 30분 안에 나와라.”
“야, 30분 안에 어떻 …게 ….”
뚝!
‘오늘은 집에서 쉴라구 했는데 ….’츄르르~!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2호선 신당역입니다.
당산대교가 안 끊겼어도 신당에서 신도림까지 30분 안에 도착하기란 지하철로는 불가능합니다.
어떡합니까??
택시를 탔습니다.
택 …! 으으으 …!!
택시 기사 아저씨한테 빨리 가 달라고 막 때를 썼습니다.
“아죠씨~빨리 좀 가주세요!”
“아니 머가 그리 급해?”
“사, 사 …람이 죽어요! 아저씨~엉엉 …!!”
“사람이?? 아라써. 꽉 잡아여.”
겨우겨우 30분 안에 도착하더군여. 택시 기사 아저씨가 저를 살린 겁니다.
“야, 나왔어. 헥헥헥!!!”
“왔구나.”
“응!!”
“너 30분 안에 안 오면 이거 마셔버릴라고 했어.”
“이거?”
그녀는 예쁜 가방 속에서 소주 한 병을 살포시 꺼내더군여.
아마 제가 30분 안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그녀는 그걸 전부 마시고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정말 무섭습니다.
빨리 과학이 발전해서 지하철 대신 공간이동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암튼!!오늘도 여지없이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띠리리링~!
“견우야. 난데, 나 지금 잠실이야.”
“잠실? 니가 잠실에 왜 있어?”
“잠실역 분수대로 나와.”
“응, 알았어.”
그리고 어김없이 한마디 하더군여.
“제한시간 30분 …!”
여기서부터 저의 전쟁 아닌 전쟁은 시작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거리에 비해 시간이 꽤 후한 편입니다. 신도림까지도 30분, 잠실까지도 30분, 아주 지 맘대로 입니다.
오늘은 그녀가 기분이 좋은 것 같습니다. 잠실까지 30분이면 지하철에 타고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죽어라 달리면 충분히 도착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전화를 받자마자 벌써 저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잽싸게 신발을 신고 대문을 박차며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승패는 역시 스타트가 좌우 합니다.
집에서 뭉그적거리고 있으면 시간이 아무리 넉넉해도 늦기 마련입니다. 학교 다닐 때도 학교에서 집이 젤 가까운 놈이 맨 날 지각하지 않습니까?
잠실역 동그란 분수대에 그녀가 앉아 있습니다. 왼쪽 무릎 부분과 오른쪽 종아리 부분이 가로로 예쁘게 찢어져 있는 구제 청바지에 넉넉한 박스티를 입고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있습니다.
뒷머리는 방울 모양의 고무줄로 묶었더군여. 미소년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나 왔어. 헤헤~!”
“응, 왔구나.”
“근데 뜬금없이 웬 잠실이야?”
“우리 롯데월드 가자!”
“바보! 그럼 미리 말을 하지 롯데월드 할인권 있는데.”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나라.
우리가 꿈꾸는 그 곳.
여기는 롯데월드~~~!!!

그녀가 입장권을 샀습니다. 자유이용권도 그녀가 샀습니다.
하하하핫! 저한테는 살 틈을 안 주더군여!
그래도 점심은 제가 샀습니다. 햄버거 한 개.
평일이라서 그런지 롯데월드 어드벤처 안에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외국인이 특히 눈에 많이 띄고, 가족 단위보다는 커플들이 많습니다. 아마 휴일과 평일의 차이인가 봅니다.
놀이공원에서 보는 커플들은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
여자가 살포시 남자의 팔짱을 끼고 한 손에는 핫도그나 솜사탕 또는 풍선 등을 들고 있습니다. 다 큰 사람들이 어디서 풍선을 들고 다니겠습니까!! 길거리에서 풍선을 들고 다니기는 좀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놀이공원은 애나 어른이나 같은 행동을 해도 용서가 되는 유일한 곳이 아닐까 합니다.
손을 꼬오오옥~ 맞잡은 남녀가 우리 앞으로 지나갑니다. 남자가 앞장서며 여자의 손을 당기면서 말하더군여.
“자기야~! 저거 타자.”
“아이 차아암~! 저거 무섭잖어. 안탈래.”
“바보, 별로 안 무서워. 타자!”
“진짜 안 무서워?”
“그렇다니깐 믿어봐!”
“진짜지?”
“그으럼~!”
여자가 참 귀엽고 예쁩니다. 남자친구가 좀 무서운 놀이기구 타자고 하면 무섭다고 징징거리고 투정부리고, 그래도 결국엔 못이기는 척 타지 않습니까?? 놀이기구 타면서 소리도 지르고. 내숭이라도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습니까!!
그녀가 우리 앞을 지나가는 그 커플을 보면서 저에게 말하더군여.
“견우야, 자이로드롭 타러 가자.”
다 아시겠지만 자이로드롭은 70미터 위에서 자유낙하 하듯이 약 2초 만에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놀이기구입니다. 롯데월드에 가장 인기 있고, 또 가장 무서운 놀이기구 중 하나입니다.
하하하핫~! 제가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헉!! 진짭니다!!!
저여??? 저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입니다!!
그것도 항공부대 헬리콥터 승무원이었습니다. 맨날 3000피트에서 헬기 타고 놀던 놈입니다.
그래도 안 믿으시는군. 흥흥!!
석촌호수 중간에 섬처럼 매직 아일랜드가 있는데 거기 있는 자이로드롭 앞입니다.
휴일 같으면 사람들이 줄을 쫘아아악~! 서 있을 텐데 평일이다 보니 줄이 별루 길지 않습니다. 그녀가 외치더군여.
“야야야홋! 사람 별로 없다아아아아~~~!”
잽싸게 그녀와 거리를 떨어뜨리면서 모른 척 했습니다.
“견우, 너 이리 안와!!!!”
“뜨금 …!”
줄을 서고 잠깐 기다린 거 같은데 벌써 탈 차례더군여. 츄르르~!
자이로드롭에 앉았습니다.
안전벨트도 했습니다.
하하하합!!! 긴장 안 됩니다.
자이로드롭이 윙~! 소리를 내며 조금씩 위로 올라갑니다.
으하하하하하합~~!
“기, 기, 긴장 …아, 아, 안 됩니 …다 …!”
드디어 정점까지 올라갔습니다. 자이로드롭 새끼가 빙글빙글 돌다가 멈추더군여.
덜컹~~!
“으아아아아아아악~~~~~~~~~!!!”
지면에 발을 닿고 있는 게 이렇게 행복한거군여 …!
“와아아아앗~~~!! 또 타자!”
“왜? 안 타??”
“그, 그게 …아니구 ….”
“모야?”
“야! 한번 탔는데 멀 또 타! 창피하게 ….”
“견우, 너 무서워서 그러지?”
“무, 무, 무섭긴 …. 아, 아, 아무렇지 안구만 ….”
“그럼 타자! 타자!!!”
츄르르~!
그 후 그녀와 저는 자이로드롭만 세 번을 탔습니다. 무서운 여잡니다.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그렇게 그녀에게 이끌려서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서너 바퀴 돌고 나니 저녁시간이 훌쩍 넘어 버리더군여. 다리도 아프고 목도 마릅니다.
“목마르다. 견우야. 아이스크림 먹자아~!”
“그래? 기둘려. 내가 사오께.”
여기저기 화려한 조명이 반짝거리는 어드벤처를 가로질러 아이스크림을 사왔습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롯데월드를 나왔습니다.
우리는 먹을 때 말 절대 안합니다. 우리 사이의 불문율입니다. 좀이라도 빨리 먹어서 상대편 먹는 거 뺏어 먹어야 하는데, 뺏어 먹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먹는 거 방해는 해야 합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부르르르~!
밖에는 벌써 어둠이 쫘악~ 깔려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석촌호수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석촌호수에서 밤에 바라보는 매직 아일랜드의 불빛은 사람들로 하여금 외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하더군여. 마치 동화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호수를 삥 돌아가면서 가로등이 군데군데 어둠을 비추고 있고, 호수의 물위에도 불빛들이 비추어 반짝거립니다. 예전에 석촌호수 주위는 밤만 되면 동네 양아치들이 모여들곤 했는데 요즘은 별루 안 그런가 봅니다.
가로등 밑의 환한 벤치에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아이랑 바람을 쐬고 있고, 가로등이 비치지 않는 벤치에는 연인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가족들도 보입니다. 유모차를 끌고 있는 아빠와 그 옆에 엄마 손을 잡고 재잘거리고 있는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주위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직 아일랜드의 화려한 불빛을 바라보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그녀와 함께 석촌호수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걷기만 하는 날인가 봅니다.
그녀는 자기가 롯데월드를 갈 생각 이었으니깐 편한 운동화를 신고 나와서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저는 발이 불편해서 아주 죽겠습니다.
“야~! 우리 어디 좀 앉자.”
“왜? 좋은데 좀 더 걷자. 우리.”
석촌호수를 두 번이나 돌고 나서야 그녀를 쫄라서 겨우 벤치에 앉았습니다. 오른쪽 벤치에는 팔짱을 끼고 있는 중년부부가 앉아 있었습니다. 중년인데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정겹더군여.
어색한 침묵이 흐릅니다.
침묵 …!
침묵 ……!
“견우야.”
“응?”
“맥주 한잔 하자.”
“맥주?”
“그래. 맥주”
하긴 저도 시원한 맥주 한 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는 캄캄하고, 앞에는 호수가 있고, 호수 위에는 놀이공원이 이국적 향기를 풍기며 불빛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그 불빛들이 호수의 물위에 비추어져서 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예쁜 빛의 파장을 만들어 냅니다.
술 한 잔 먹기 딱 좋은 분위기 아닙니까?
애인과 함께라면!!!!
하지만 전 이 여자랑 술 마시기 싫습니다.
미쳤습니까!!! 또 먼 꼴을 당하라구 ….
“야아~ 웬 술이야. 관두자.”
“마시고 싶어서 그래. 맥주 한 캔만 사와라.”
“도리도리!”
“빨리잇!”
‘맥주 한 캔이면 괜찮겠지? 설마~ 무슨 일 있으려고 … 으흠 …!
“그럼 쫌만 기다려. 사올 테니까.”
“응.”
석촌호수 주위에는 가게가 없더군여. 자판기도 음료수 자판기 밖에 없습니다. 돈 벌고 싶으시다면 석촌호수에 맥주 자판기 한 대 설치하세여.
석촌호수를 빠져나와 차도를 건너서야 겨우 구멍가게를 찾았습니다. 맥주 두 캔과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녀는 멍한 눈빛으로 호수를 바라보고 있더군여.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까와 분위기가 틀립니다. 눈치도 틀립니다. 왠지 슬퍼 보이는 눈빛 ….
호수의 불빛 때문일까요?
“야!”
“깜짝~! 어 …엉?”
“너 죄졌어? 왜 놀래?”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멍하니 있어?”
“응 …? 아냐. 근데 오래 걸렸네?
“응, 근처에 가게가 없더라.”
“그래.”
맥주를 하나 따서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제 것도 땄습니다. 새우깡도 뜯었습니다.
“마시자.”
“그래.”
“참, 견우야! 건배해야지.”
“건배? 그래. 하핫!”
“근데 뭘 위해 건배하지? 으음 …음 ….”
“ …….”
“그래! 내일을 위해 건배!”
“야! 겨우 생각한 게 그거야? 너무 평범하다.”
“그래서 안 할 거야? 죽을래?”
“거 …건배!!!”
술을 마시면서도 그녀는 내내 멍하니 호수만 바라봅니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실 때쯤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군여. 그리곤 지나가는 남자를 불러 세웁니다.
“야! 너!”
‘헉 …! 얘가 왜 이래?’란 생각이 들자마자 잽싸게 도망갔습니다. 벤치 뒤에 숨었습니다. 하하하핫 …!
길을 지나가던 남자가 주춤거리더군여.
“야, 너! 너 왜 빨간 옷 입었어? 앙! 누가 빨간 옷 입으랫!”
“아니, 모야? 이 여자가! 지금 나한테 그런 거야?”
“그럼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앙!”
“이런 별 미친 …. 그러는 넌! 왜 박스티 입었어!!” (헉 …! 둘이 잘 어울린다)
길을 지나가던 그 남자가 그녀를 미친년 보듯 하면서 지나갑니다. 저는 벤치 뒤에 숨어서 생각했습니다.
‘제가 진짜 미쳤나? 내가 이럴 거 같아서 술 안 마시려고 했는데. 으으 …! 넌 절대 날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푸하하하하핫!”
그녀가 소리 내어 크게 웃더니 다시 벤치에 앉았습니다.
“야! 거기서 모해?”
저는 또 잽싸게 벤치 뒤에서 나와서 그녀 옆에 앉았습니다. 하하하합 …!
“견우야, 어디 갔다 왔어?”
“지금 몰라서 물어?”
“견우야, 호수가 참 예쁘다.”
“ …….”
“우리 가까이 가서 보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가 일어나서 호수 쪽으로 다가가더군여. 저는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 갔습니다. 그녀가 수풀을 헤치고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야! 여기 들어가면 안 돼!”
“왜?”
“위험하잖아.”
“들어가고 싶은데?”
“너 진짜로 들어가고 싶은 거야?”
“응.”
“음 그래? 그럼 기다려봐.”
어차피 제가 들어가지 말란다고 그녀가 안 들어갑니까?? 괜히 말렸다가 맞는 거 보다 안 다치고 들어가게 해주는 게 날 것 같았습니다. 제가 먼저 들어가면서 그녀가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막고 있던 주위의 작은 나무들을 헤집어 주었습니다. 나무의 가시가 옷을 파고들어 따끔따끔 하더군여.
호수 바로 앞에 그녀와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는 가로등 불빛이 비춰 반짝거립니다.

호수도 출렁거립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눈이 반짝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눈에 눈물이 고이더군여. 저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헤어진 애인을 생각하나 봅니다. 그녀의 볼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립니다. 지금의 저는 그녀의 눈물조차 닦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런 위로도 해줄 수 없어 가슴이 아픕니다.

그녀, 겉으로는 터프하고 엽기적이기도 하지만 속은 너무나 약하고 잔정도 많고, 작은 상처에도 아파한다는 것, 저는 벌써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호수가 참 예쁘다. 호수에 들어가면 좋겠다.”

그녀가 혼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하더군여. 저는 바짝 긴장했습니다. 지금 진돗개 하나 상황입니다. 갑자기 그녀가 호수로 뛰어들면 어쩝니까!! 전 물에 젖은 여자를 업고 모텔을 찾아 헤맬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녀의 옆에 앉아 있다가 그녀의 앞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녀의 돌발적인 행동을 막으려면 아무래도 앞에 있는 게 편할 거 같았습니다.
“견우야.”
“으응?”
“너 왜 그래?”
“아냐~하핫! 아무 것도 아냐.”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매직 아일랜드에 흘러나오는 음악도 순간 멈춥니다. 정적이 흐릅니다.
순간 … …!
“으허헉! 모야~?!!!”
허우적~! 허우적~!

“허거걱. 어푸어푸~! 꼬르르르륵~~!”
네, 그렇습니다!
저는 어느새 호수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호수물이 얼마나 깊은가 한번 볼라구 앞에 앉아 있던 저를 떠밀은 것이었습니다!!

“악악악!!! 으아아아아악!! 차라리 칼로 찔러라 찔러!!!!"
아무리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쳐도 잘 안되더군여. 석촌호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그런데 아무도 뛰어들어 꺼내줄 생각을 안 합니다. 하다못해 잡을 거라도 던져주는 사람이 없더군여.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사람들 절라게 야박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터프한 그녀도 놀랐던지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석촌호수, 보기와 다르게 쬐만한 게 절라 깊습니다. 땅 바로 앞인데도 바닥에 발이 안 닿더군여. 아무도 살려줄라고 안 하길래 저 혼자 미친 듯이 기어 나왔습니다.
저?? 생명력 강한 놈입니다. 잡초 같은 넘입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습니다.
“헥헥헥, 헥헥, 허헉!”
주위에서 사람들이 쑤근쑤근 거리더군여.
"자기, 모야? 저사람 자살할라고 그랬던 거야?"
“아닌 거 같아. 자살하려는 사람이 지 발로 겨 나오겠냐?”
“그럼 미끄러졌나봐.”
“총각 괜찮어?”
“헥헥헥!”
위용~위용~위요옹~!!!
사이렌 소리가 나는 듯싶더니 경찰 아저씨 두 분이 내려오십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신고를 한 모양입니다.
“모예요?”
“헉!!경찰 아저씨 …!
그녀와 저는 용감하게 경찰차를 탔습니다!
경찰차는 우리를 태우곤 근처 파출소로 끌고 가더군여. 파출소 안에 있는 검정색 꼬진 의자에 그녀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자네, 거긴 왜 뛰어 들어갔어?”
“아저씨, 하하핫!!”
“거기 왜 들어갔냐고?”
“하하하하합~!”
“모야, 미쳤어? 왜 웃기만 해!!"
“흐흐흐 …! 미끄러졌어여.”
“진짜로 미끄러진거야?”
“헉! 아저씨, 제가 그럼 자살할 놈으로 보이세요?”
그녀를 살짝 바라보니 옆에서 얼굴까지 뻘개져 가며 웃음을 참고 있더군여. 죽을라구!!!!!
나이가 조금 드신 파출소장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지나가며 한마디 하십니다.
“자네, 집에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봐.”
“아저씨잇! 저 죽을려는 거 아니었다니까여!!”
제 앞에 있던 아저씨와 파출소장님이 바통터치를 하더니 파출소장님께서,
“나 어렸을 때는 먹을 거 없어서 굶었어, 이 사람아!” 로 시작한 이야기가 보릿고개에서 광주사태로 새마을운동에서 현대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를 넘나들며 약 2시간 동안 이어지더군여.
저는 옷이 젖어가지고 축축해 죽겠는데 그녀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연신 고개까지 끄떡끄떡 거리며 듣고 있습니다. 고개만 끄덕이면 말도 안합니다. 맞장구까지 치면서 난리 났습니다.
“우리 어렸을 땐 먹을 게 없어서 칡뿌리 캐 먹었었어. 휴으~!”
“네, 아저씨. 울 아버지도 그러셨대요.”(끄덕끄덕~)
“아저씨, 칡뿌리는 요즘 건강식품인 데여?”(껄렁껄렁~)
“견우, 넌 시끄럽!!”
이런 죽일!! 말도 못하게 하다니 ….
그렇게 약 2시간 동안의 설교를 전부 들은 후 그녀와 저는 파출소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옷은 아직도 많이 젖어 있긴 하지만 다행이 밤이고 보니 그렇게 티가 나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군데군데 젖은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흠뻑 젖어서 티가 안 납니다.
하하핫. 다행인 건가?
그녀와 저는 젖은 제 옷도 말릴 겸해서 다시 석촌호수로 갔습니다.
그녀는 호수를 보더니 또 아무 말도 없이 다시 슬픈 눈으로 호수를 바라봅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야!! 너 나 물에 빠져 죽으면 어쩌려고 거기다 떠민 거야!!”
그녀가 울 것 같은 눈으로 저를 보면서 말합니다.
“남자들은 다 나쁜 놈들이야.”
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화도 낼 수 없었습니다.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허전함이 느껴집니다. 가슴 한구석에 희미한 통증이 전해져 옵니다. 이제 그녀가 슬픈 생각할 때 어떤 눈빛이 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언제쯤이면 그녀의 상처가 아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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