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맹의 균형추, 지소미아
미국과 한국은 오랜 동맹관계이고 한국이 타국으로부터 핵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게 돼 있다. 쉽게 말해 북한이 쳐들어 오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우리 국민을 보호해주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여러 측면에서 우리가 ‘을’인 경우가 많다. 강대국인 미국과의 관계이다 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의 또 다른 동맹인 일본과의 관계는 좀 다르다. 한국을 대하는 것보다는 좀 더 ‘무게’가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한국이 미국과의 대화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주제는 ‘북한’인 반면, 미국은 북한문제보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국들과 똘똘 뭉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일본은 미국이 가려운 데를 잘 긁어주는 나라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싸우는 걸 원치 않는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ㆍ미ㆍ일이 협력해야만 중국을 잘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미국은 한일 간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고조될 때 불편한 기색을 비췄고, 동맹국 간의 갈등인 만큼 겉으로는 한쪽 편을 들지 않으려고 했다. 한국은 내심 미국이 우리 편을 들어주길 바라며 미국이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미국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과 일본 간 갈등이 심화된 것은 2019년 7월, 일본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위안부 배상 판결을 문제 삼으면서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부터다. 이에 우리 정부는 그해 8월, 한일 간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발표에 화가 난 건 미국이다. 당시 지소미아 관련 협의에 깊이 관여했던 관계자는 “지소미아 때문에 미국이 한국에 굉장히 불쾌해했다”라며 “한국이 지소미아를 건든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중단 발언 이후 나는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리비어는 ‘워싱턴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지소미아 발언 때문에 화가 나 있다(deeply frustrated)’라고 답했다. 그가 말한 ‘워싱턴의 많은 사람들’은 워싱턴 내 전문가 집단과 행정 관료들을 뜻한다.
워싱턴의 싱크탱크 그룹에 속한 몇몇 교수들과 직접 이야기하면서 느꼈던 점은 미국 정부는 한일관계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안에 관심이 있는 일부 전문가 집단이나 관료들도 사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워싱턴의 한 학자는 통화에서 “한국이 위안부 합의를 먼저 깬 것 때문에 (한일관계 악화) 문제를 촉발시켰다고 보는 사람이 워싱턴에 많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일부 전문가들조차 이런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지소미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국가는 어디일까. 지소미아는 북한 등 타국의 위협에 한국과 미국, 일본이 각자 파악한 군사정보를 공유해 맞대응하기로 한 약속이다. 북한이 도발했을 경우, 군사정보 파악이 가장 부족한 국가는 일본이다. 이지스함 등 정찰자산이 한국보다 많기 때문에 미사일이 발사되면 탄착 지점, 궤적 등을 파악하는 데 강점이 있다곤 하지만, 발사 지점, 각도 등의 파악은 우리가 훨씬 우위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맞대응에는 세 나라의 정보가 다 합쳐졌을 때 가장 용의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대응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불쾌해하는 이유는 지소미아가 제대로 작동해야 중국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큰 그림이 있는데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언급하자 불쾌해했다는 거다.
반면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를 일본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카드’로 보았다. 지소미아를 거론할 때는 우리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많았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지소미아 유지를 원했지만, 김현종 당시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나 노영민 비서실장 등은 일본을 움직이는 ‘레버리지’로 써보자고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본은 좀처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은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유예’ 상태로 유사시 그나마 효력은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지소미아를 하나의 ‘카드’로 여기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우리 정부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선 역시 곱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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