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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맛있는 맥주 인문학>

06. 북한, 대동강 맥주 비결?

by BOOKCAST 2020.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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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맥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북한의 지배계급을 언급해야 한다. 워낙 폐쇄적인 국가다 보니 자료가 많지 않아 어려움이 있지만, 북한 맥주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 북한 맥주는 2000년대부터 남북한 화해 분위기를 타고 조금씩 수입되었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함 사태로 남북 교역이 중단되면서 북한 맥주도 수입이 끊겼다. 개성공단을 오가는 직원들이 들여오기도 했지만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면서 한국 내에서는 북한 맥주를 맛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북한과 교류가 이어진 중국의 옌지(延吉)나 단둥(丹東)에서는 판매되고 있다.

 

 

북한의 대동강 맥주는 튜더의 「화끈한 음식, 따분한 맥주」 기사 덕에 관심을 모았다. 2000년 남북 화해 분위기를 타고 수입되었으나 남북 관계가 악화되면서 수입이 중단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2년 『이코노미스트』에 「화끈한 음식, 따분한 맥주」라는 기사가 실리며 북한의 대동강 맥주가 관심을 받았다. 이 기사는 “맛없는 김치는 못 참는 한국인들이 왜 고루한 맥주는 꿀꺽꿀꺽 잘 마시는지 의문”이라며 “북한의 대동강 맥주가 고루한 한국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북한 맥주를 마실 수 없었기에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대동강 맥주는 정말 한국 맥주보다 맛있는 것일까?

물론 대동강 맥주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있었다.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면서 남북 화해 분위기에 남북 교류의 물꼬가 트이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북한의 식품이 수입되었다. 북한에서 만들어진 다른 식품들과 함께 맥주와 소주 같은 주류도 유통되었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어려워지면서 북한 맥주는 구하기 힘든 술이 되었고, 한창 입소문이 나서 대동강 맥주를 즐겨 찾던 사람들은 아쉬워했다. 처음 맛볼 때는 신기해서 마셨는데, 두 번째부터는 맛있어서 마시게 되는 게 북한 맥주다. 북한 맥주는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 맥주와는 차원이 달라진 것일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북한의 최고 지도자 자격으로 두 차례 러시아를 방문했다. 2001년 여름에 있었던 첫 방문은 전 세계에 큰 화제가 되었다. 평양에서 모스크바는 비행기로 9시간 거리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특별열차를 타고 장장 23박 24일에 걸쳐 모스크바를 왕복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모스크바에 도착하기 전까지 세 차례 정도 특별열차에서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산(Khasan), 바이칼호 부근 슬류댠카(Slyudyanka), 그리고 옴스크(Omsk)였다.

왕복 약 2만 킬로미터를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오간 여정은 서방 언론에 ‘21세기에 19세기식 여행을 한다’는 조롱을 듣기도 했지만, 북한은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둘러본 뒤 모스크바를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는데, 이때 발티카 맥주를 맛보고 “우리는 왜 이렇게 못 만드냐”고 해서 대동강 맥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동강 맥주의 모델이 되었다는 러시아 발티카 맥주. 맥주에 번호를 붙여 종류를 나누는 방식도 발티카 맥주에서 착안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맥주의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하기 시작한다. 북한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대동강 맥주는 “흰쌀과 보리의 혼합 비율에 따라 번호를 붙인 7가지 품종을 생산해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대단한 음료”라고 한다. “2008년 12월 국제규격화기구(ISO9001)의 품질 관리 체계인증을 받고 2010년 10월에 북한에서 처음으로 식품 안전 관리 체계 인증을 획득”했다고도 한다. 기존의 1~7번 제품 외에도 최근에는 밀맥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시작된 ‘맛있는 맥주 만들기 기획’은 대동강 맥주가 북한을 대표하는 맥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동강 맥주의 평을 들어보면 상당히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와 『로이터(Reuters)』의 보도를 보면, 북한은 영국 어셔스(Ushers) 양조장이 문을 닫자 공장에 있던 설비를 전부 들여왔다.

영국 남부 윌트셔(Wiltshire)주의 트로브릿지(Trowbridge) 지역에서 1824년 문을 연 어셔스 양조장은 에일을 생산하던 전통적인 양조장이다. 이때 북한이 쓴 돈이 350만 달러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어셔스 양조장의 시설을 2001년 북한으로 운반한 뒤재조립했다. 2002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대동강 맥주를 생산했다. 대동강 맥주 공장은 현재 평양 사동 구역 송신 1동에 있다. 맥주 양조에 관여하는 사람이 800명 정도라고 한다.

대동강 맥주는 한국에서 유명해졌으나 원가가 너무 비싸 마진이 안 맞아 결국 수입을 포기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정치 문제라고 한다. 물론 북한의 대동강 맥주는 일단 재료를 아끼지 않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최고의 맥주를 만들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동강 맥주의 원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북한에는 룡성 맥주와 봉학 맥주, 대동강 맥주, 금강 생맥주, 평양 맥주 등 다양한 맥주가 있다. 다만 생산을 제대로 못해 시장에서 보기 어려워 웬만한 간부라 해도 중국산 맥주를 마시는 게 보통이다. 반면 북한의 엘리트와 상류층은 사소한 음식부터 맥주에 이르기까지 거액을 들여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특별한 시설에서 따로 만들어 즐기고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의 지배 세력을 위한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9호 농장’이 있다. 여기서 맥주의 재료가 되는 홉과 보리 등을 재배한다.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북한은 체코의 홉 기술자 9명을 초청해 기술을 전수받고 현대식 홉 가공 공장도 건설했다. 양강도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홉 농사를 지었던 곳으로 기후가 좋고 위도 상으로도 홉이 자라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굉장히 좋은 홉을 수확할 수 있다.

•대동강맥주 1번
원엑스(원액) 10퍼센트, 알코올 4.5퍼센트, 맥아 100퍼센트.

•대동강맥주 2번
원엑스 11퍼센트, 알코올 5.5퍼센트, 맥아 70퍼센트, 백미 30퍼센트.

•대동강맥주 3번
원엑스 11퍼센트, 알코올 5.5퍼센트, 맥아 50퍼센트, 백미 50퍼센트.

•대동강맥주 4번
원엑스 10퍼센트, 알코올 4.5퍼센트, 맥아 30퍼센트, 백미 70퍼센트.
•대동강맥주 5번
원엑스 10퍼센트, 알코올 4.5퍼센트, 백미 100퍼센트.
•대동강맥주 6번
원엑스 15퍼센트, 알코올 6.0퍼센트, 흑맥주, 맛이 진하고 커피 향.
•대동강맥주 7번
원엑스 10퍼센트, 알코올 4.5퍼센트, 흑맥주, 맛이 부드럽고 초콜릿 향.

더불어 우리나라 맥주가 따라가기 힘든 결정적인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맥아의 함량이다. 곡물 중 맥아의 함량이 아니라 맥주 전체에서 맥아가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 거다. 우리나라에도 곡물 중 맥아의 함량을 따지면 맥아 100퍼센트 맥주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맥주에 사용된 곡물 중에서 맥아가 100퍼센트라는 것이지, 술 전체에서 10퍼센트라는 말은 아니다. 맥주의 전체 내용물에서 맥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많아봤자 5~6퍼센트다. 그에 비해 북한은 10~12퍼센트 정도다. 한마디로 북한에서 맥주를 만들 때 투입하는 맥아의 양은 우리나라의 2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맥주 100리터를 만들 때 4~5킬로그램의 맥아를 사용한다고 하면, 북한은 맥주 100리터를 만들 때 맥아 10~12킬로그램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홉은 수출할 정도로 품질이 좋다. 유기농일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태다 보니 북한 맥주와 우리나라 맥주는 급이 다르다. 우리가 마시는 맥주가 일반 맥주라고 한다면 북한에서 만든 맥주는 프리미엄급인 셈이다. 그것도 아주 훌륭한 프리미엄 말이다. 이렇다 보니 맛을 본 사람들은 북한 맥주에 손이 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양심 맥주’를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만나보기 어렵다. 마트에서는 보기 힘들고, 자가 양조하는 방법 외에는 없을 것 같다. 자가 양조할 때는 보통 100리터의 맥주를 만들기 위해 25킬로그램의 맥아를 사용한다. 2.5킬로그램이 아니라 25킬로그램이다. 이것도 최소치다. 물론 수율에 따라 편차는 존재한다. 어찌 되었든 재료를 아끼지 않고 집어넣으니 맛이 안 좋을 리 없다. 맛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우리나라의 맥주는 그렇게 적은 재료로 이 정도의 맥주를 뽑아내고 있으니, 그 기술력은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 부분에서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북한에서 생맥주를 마시려면 배급권 같은 표가 있어야 한다. 이 표가 귀해서 암표로 비싸게 웃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한다. 1990년대에 북한을 대표하는 맥주는 용성 맥주였다. 그 외 봉학 맥주, 금강 맥주 등이 있었고 대동강 맥주는 별로 이름이 없었다. 봉학 맥주는 대동강 맥주와 성분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대동강 맥주는 인위적으로 탄산을 주입해, 마실 때 탄산가스가 목을 자극해 청량감을 준다. 봉학 맥주는 인위적인 탄산 주입을 최대한 자제해서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래서 봉학 맥주가 대동강 맥주에 비해서 좀 더 고전적이다. 대동강 맥주는 생맥주와 병맥주로 생산되는데 주로 에일과 흑맥주, 밀맥주다.

 

 

대동강 맥주 외에도 북한 에는 용성 맥주, 봉학 맥 주, 금강 맥주 등이 있다. 봉학 맥주는 대동강 맥주 보다 탄산이 부드럽고 고 전적이라고 한다.

 

 

맥주 마니아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동강 맥주를 상당히 즐겨 마신다고 한다. 이제 혼자만 마시지 말고 북한 주민에게도 마시게 해주고, 맥주 개발에는 그만 돈 쏟고 북한 주민들에게 밥을 잘 먹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싶으면 오바마 대통령처럼 자가 양조하면 좋을 텐데 안타깝다. 어찌 되었든, 남북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으니 다시 대동강 맥주의 수입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더운 여름 편의점에 앉아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나누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다음은 대동강 맥주의 품질관리에 관한 글이다. 대동강 맥주 품질관리 과장인 한현철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스 함량이 높고 시원한 동시에 똑똑한 맛을 가진 것이 세계적 추세”라면서 “다른 나라 맥주들과 경쟁하는 것보다 인민의 입맛에 맞는 것을 생산하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 분석실에서는 두 달에 한 번씩 현장에 나가 시민들의 반응을 직접 듣기도 한다”고도 했는데, 이게 ‘뻥’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맥주 회사들도 새겨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민에게 ‘내가 만든 맥주에 입맛을 맞추어라’고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대동강 맥주의 다양성이 부럽다. 아무리 공산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한 회사에서 7~8가지 제품군을 보유하고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의 입맛을 인정하고 선택권을 준다는 의미다. 거기에 추가 제품까지 개발해서 내놓고 있다. 이런 점을 우리나라 맥주 회사들도 배워서 실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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