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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맛있는 맥주 인문학>

04. 세계적인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by BOOKCAST 2020.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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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우리 가슴을 뛰게 하는 단어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독일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10월 축제)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옥토버페스트는 원래 맥주 축제가 아니었다.

바이에른 왕국의 왕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는 1810년 10월 12일에 거행된 아들 루트비히 1세(Ludwig I)와 작센의 공주 테레제(Therese von Sachsen-Hildburghausen)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5일 동안 왕국의 모든 경제와 정치 활동을 중단시켰다. 이 기간에 축하 연회와 바이에른과 작센의 민속경기가 열렸다. 마지막 날인 10월 17일에는 근위대의 안드레아스 폰 달라르미(Andreas von Dall’Armi) 소령이 기획한 말 경주가 열렸고, 왕족과 뮌헨 시민들이 참석했다.

 

 

 

 

옥토버페스트를 위해 친 대형 축제 천막을 베어첼트라고 한다. 옥토버페스트는 ‘맥주 축제’로 유명하지만, 시작은 왕실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였다.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던 왕은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음 해인 1811년에도 최고 흥행 요소였던 말 경주를 비롯해 농업 박람회 같은 볼거리를 추가해 행사를 열었다. 바이에른의 맥주 제조 기간은 1553년에 만들어진 맥주 제조법에 따라 9월 29일부터 다음 해 4월 23일까지였다. 9월에는 3월부터 저장해둔 맥주를 마시는 가을 맥주 축제가 벌어졌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행사가 열리면서 10월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부터 정기적인 축제로 자리 잡는 듯했으나 1813년에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행사가 열리지 못했다. 다행히 1814년 재개되었고 1819년부터는 뮌헨의 신부가 주관하면서 연례행사가 되었다. 말 경주와 더불어 뮌헨 사격 협회가 주관하는 사격 대회도 매년 열렸다. 축제 시기는 9월로 앞당겨졌는데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다 보니, 춥지 않을 때 진행하기 위해서다. 1820년에는 루트비히 1세와 테레제의 은혼식 기념으로 행사가 열렸다.

 

 

 

 

위에서 내려다본 테레지엔비제. 테레지엔비제는 루트비히 1세와 결혼한 작센 공주 테레제의 이름을 딴 것이다.

1881년부터는 1만 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초대형 천막인 비어첼트(Bierzelt)를 설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옥토버페스트는 맥주 축제가 아니었다. 1894년까지는 다양한 구경거리가 옥토버페스트의 주요 관심거리였다. 맥주는 작은 부스에서만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 1895년 뮌헨의 맥주 공장들과 협업하게 되면서 축제의 분위기는 맥주 중심으로 바뀌어갔다. 옥토버페스트는 전쟁과 전염병 같은 큰 사건이 일어날 때를 빼고는 매년 열렸다.

말 경주가 열렸던 잔디밭을 비제(Wiese)라고 하는데, 테레제의 이름을 따서 테레지엔비제(Theresienwiese)라 한다. 이곳이 옥토버 페스트의 행사장이다. 이곳에서 아우구스티너(Augustiner)·하커프쇼르(Hacker-Pschorr)·뢰벤브로이(Löwenbräu)·파울라너(Paulaner)·슈파텐 등 각 양조장이 자존심을 걸고 만든 맥주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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