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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맛있는 맥주 인문학>

02. 맥주와 산업 스파이

by BOOKCAST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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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에 숨겨온 양조 비법

 

문익점은 목화씨를 붓대에 숨겨 들여와 추운 겨울을 따듯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준 위인으로 존경받는다. 하지만 사실 목화씨는 붓대에 숨겨오지 않았고 그냥 짐 속에 넣어서 가져왔다고 한다. 목화씨가 원나라의 반출 금지 품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목화는 이미 원나라에서 널리 재배되고 있었고, 반출 금지 품목은 화약・지도・나침반 등이었다.

비슷한 일이 유럽에서도 있었다. 주인공은 뮌헨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Gabriel Sedlmayr)와 빈의 안톤 드레어(Anton Dreher)다.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을 이용한 자동화가 이루어지면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는 등 산업은 엄청나게 발전했다. 그러나 맥주 양조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양조업자들은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노력과 생각보다 운과 기도에 기대고 있었다. 이런 토테미즘적 맥주 양조는 전통적인 맛과 향기를 지키려는 노력이었는데, 맛과 향이 바뀌면 손님들이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맥주 양조업자들은 기존 방식을 바꾸는 것에 반감이 컸다.

 

 

 

 

영국의 맥주 제조법을 몰래 가져온 제들마이어(왼쪽)와 드레어(오른쪽). 맥주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산업 스파이’들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나 돌출 행동으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이 있다. 맥주 양조업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제들마이어와 드레어다. 두 사람은 런던 인근 버턴 온 트렌트 맥주의 인기를 알아내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갔다.

제들마이어와 드레어는 1833년 버턴 온 트렌트의 여러 양조장을 다니며 속이 빈 지팡이 속에 샘플용 맥주와 워트를 담아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맥아를 직접 가열해 건조시켜서 탄내가 나는 진한 맥아로 맥주를 만들던 유럽 대륙과 달리 영국에서는 맥아를 간접 가열해 맥주를 만든다는 것을 알아냈다.

 

 

 

 

드레어와 제들마이어가 가져온 방법으로 라거를 만든 슈파텐은 지금도 옥토버페스트에 맥주를 공급하고 있다.

드레어는 이렇게 만든 몰트로 깔끔한 비엔나 라거를 만들었다. 제들마이어의 슈파텐 양조장에서도 기존의 방식과 새로운 연구 결과를 조합해 메르첸(Märzen, 3~4월에 빚는 색이 짙고 독한 맥주)을 만들었다. 슈파텐 양조장은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에 맥주를 공급하는 공인 양조장이다. 두 명의 개척자가 만든, 어둡지 않으면서 깔끔한 라거가 전 유럽 휩쓸었고 나중에는 영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 맛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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