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는 몸을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다. 반쯤 벌린 입술 사이로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말을 하려 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비평가들은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이야기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살짝 벌린 입술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의 그림에 어떤 대단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거라며 괜한 기대를 해본다.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의 주인공인 소녀 모델에 대해 궁금해한다. 소설에서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가 하녀로 등장한다. 실제로도 소설과 같이 모델이 하녀였다는 설과 첫째 딸 ‘마리아’라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베 메르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그의 딸은 11세였고, 그 이후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도 그의 딸과 일치하는 인물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마리아는 아닐 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로 여자들이 진주 귀고리를 하는 것은 매우 관례적이었다. 한마디로 진주는 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림에 나오는 크기의 진주를 살 수 있을 만큼 잘 살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이름을 알 수 없는 소녀가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은 15세기 유럽에서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동양의 터번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미술사학자들이 이 그림이 초상화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트로니’라는 것으로 화가와 수집가들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얼굴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실존 인물이 아니라 허구의 인물을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다. 내가 봐도 환상 속의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그녀는 아름답고 실존하는 인물로 보이지만
실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상화된 존재예요.
예를 들면, 그림에서 코의 선이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가 선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모든 것이 환상입니다.”
‐ 알베르트 볼랑케르트(베르메르 연구가,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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