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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그림에 끌리다>

01. 모딜리아니-사랑과 죽음 그리고 인생의 완성

by BOOKCAST 2020.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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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의 초상화는 목과 얼굴이 기다랗다는 특징이 있다. 자신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직감하고 있었던 그는 말년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과 얼굴이 길어진 초상화를 무수히 그렸다. 그 모델의 주인공은 바로 아내 잔느 에뷔테른(1898~1920)이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란 그녀도 그림을 사랑하는 화가였다.
 
모딜리아니와 잔느 에뷔테른은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나 숙명처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유대인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잔느의 부모는 14살 연상의 유대인 무명 화가에 병약했고 알코올중독자인 모딜리아니를 탐탁지 않아 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연인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때 잔느 에뷔테른이 19세였고 모딜리아니는 33세였다.
 
운명은 그 두 사람의 사랑을 잠시 축복하는 듯했다. 그들은 죽는 날까지 합법적인 부부가 되지 못했지만 첫딸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듯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딜리아니는 술과 대마초를 끊지 못했고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1920 1 24, 36세의 나이에 결핵 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사랑하는 잔느,
영원히 나의 모델이 되어주오.”

 
죽어서라도 약속을 지키고 싶었을까. 깊은 슬픔에 빠져 지내던 잔느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가 땅에 묻히기 전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뱃속에 있는 둘째 아이와 함께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진정 죽음은 인생의 완성인가? 살아생전 알려지지 못한 그의 그림은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동정이라도 하듯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고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잔느 에뷔테른의 자살로 인해 모딜리아니의 비극적인 생애가 부각되었고, ‘비운의 천재 화가로 다시 주목받게 되었다. 그의 작품 가치가 상승하면서 화랑의 경제적 이윤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모딜리아니의 부부 이야기가 신화화되어 왜곡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의 딸 잔느 모딜리아니다. 그녀는 1958년 아버지 모딜리아니의 전기를 쓰면서 왜곡된 아버지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애썼지만 많은 사람은 여전히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에 동정심을 보내고 싶어 하는 듯했다.
 

모딜리아니는
왜곡된 자신을 원했을까?’

 
그들의 삶이 왜곡되었지는 모르지만, 그의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나마 일종의 보상을 받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너무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기 때문일까?
 
살아생전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그림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응원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상대방을 화폭에 담았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큰 모자를 쓴 잔느 에뷔테른〉 1918~1919년, 54×37.5㎝,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에뷔테른이
“모딜리아니, 당신은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 거죠?”라고 물었다.
모딜리아니는
“당신의 영혼을 보게 되면,
그때는 눈동자를 그릴 수 있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기다란 목에 텅 빈 눈을 지닌 슬픈 분위기의 초상화는 전통적인 초상화와 확연히 다르다. 긴 목과 텅 빈 눈으로 인해 시적이며 우수에 가득 찬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듯 슬픈 분위기를 자아내는 모습은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를 보고 눈이 없다고 표현하지 않고, 텅 빈 눈을 가졌다고 말한다. 그 텅 빈 눈을 통해 내적 불안, 고통, 서글픔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가슴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아놓은 슬픔과 절망을 엿본다. 방황과 고독 그리고 슬픔은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남한테 쉽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꼭꼭 숨겨 두고 싶은 감정이기도 하다. 그 이유가 뭘까? 남들한테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그리고 끊임없이 더욱더 강해져야 한다고 자신에게 되뇐다.
 
그의 그림에는 애써 슬픔을 감추려 하지만, 불가사의할 만큼 아름다운 우아함이 드러나 있다.
그것은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아주 조심스럽게 내면에 깃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록 슬픔일지라도 숨이 멎는 순간까지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죽음을 앞두고 그는 자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자화상〉 1919년, 100×65㎝, 캔버스에 유채, 상 파울루 대학교 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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