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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슈퍼 팩트>

01. 감정에 지배당하지 말고 지배하라

by BOOKCAST 2022.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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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 지배당하지 말고 지배하라
 
저명한 전문가마저 속는 어처구니없는 사기는 지금도 자주 일어난다. 사기의 원인을 그림 자체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페르메이르가 그린 진품을 첫 번째 위작인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와 비교하면 어떻게 속는 사람이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브라함 브레디우스 같은 식견을 가진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페르메이르는 진정한 대가였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이다. 이 작품은 매혹적이고, 순진하고, 사랑스럽고, 긴장한 모습을 동시에 지닌 소녀를 그린 빛나는 초상화이다. 이 작품을 토대로 소설이 출간되었고 할리우드 스타인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이 무명의 소녀 역을 맡은 영화까지 제작되었다.

<우유 따르는 여인(The Milkmaid)>은 집안일을 하는 소박한 여인의 모습이 청동 주전자에 대한 묘사나 손에 잡힐 것처럼 맛있어 보이는 갓 구운 빵의 표현 덕분에 고양된다. 그리고 <편지를 읽는 여인(Woman Reading a Letter)>이 있다.

여인은 보이지 않는 창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빛 속에 서 있다. 그녀는 임신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가슴 가까이 편지를 들고 눈길을 아래로 향하여 편지를 읽는 그녀의 옆모습을 본다. 이 이미지에는 극적인 고요가 있다. 우리는 그녀가 소식을 알기 위해 편지를 읽는 동안 숨을 멈춘 것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도 숨을 멈추게 된다. 실로 명작이다.

하지만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는 어떨까? 앞서 소개한 작품들에 비하면 정적이고 어색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열등한 모방작이 아니라 아예 페르메이르의 작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끔찍한 그림은 아니지만 뛰어나지도 않다. 페르메이르의 작품과 나란히 놓으면 음침하고 투박해 보인다. 그런데도 다른 여러 위작과 함께 세상을 속였다.
 


위조범이 무모함과 불운 때문에 잡히지 않았다면 지금도 계속 세상을 속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위쪽 그림이 페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고 아래쪽 그림은 위작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이다.
 

대중의 감정 조종하기

1945년 5월, 유럽에서 전쟁이 마무리되는 가운데 연합군미술위원회(Allied Art Commission)에 속한 두 명의 장교가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좋은 저택 중 하나인 케이저르스흐라흐트(Keizersgracht) 321번지의 문을 두드렸다.

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한 판 메이헤런(Han van Meegeren)이라는 카리스마 있는 키 작은 남자였다. 그는 젊은 시절 화가로서 잠깐 성공을 누렸다. 그러다가 중년에 턱살이 늘어지고 머리가 셀 무렵에는 미술품 중개상으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문제 있는 사람들과 거래했을지도 몰랐다. 두 장교가 중대한 혐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 혐의는 판 메이헤런이 새롭게 발견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걸작, <간음한 여인(The Woman Taken in Adultery)>을 독일 나치에 팔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매수자가 그냥 나치가 아니라 히틀러의 오른팔인 헤르만 괴링(Hermann Göring)이었다.

판 메이헤런은 체포되어 반역죄로 기소되었다. 그는 완강하게 부인하면서 혐의를 벗으려 애썼다. 강하고 빠르게 말하는 그의 태도는 대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은 아니었다. 며칠 동안 수감되어 있던 그는 결국 굴복했다. 메이헤런은 반역이 아니라 네덜란드와 미술계 전반을 경악시킬 범죄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비웃는 얼굴로 “바보 같은 양반들아! 내가 값을 따질 수 없는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괴링에게 팔았을 것 같소? 애초에 페르메이르의 그림은 없었소! 그건 내가 그린 거요”라고 말했다.

판 메이헤런은 나치의 손에서 발견된 작품뿐 아니라 페르메이르의 작품으로 간주한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를 비롯한 다른 여러 작품을 그렸다고 인정했다. 이 사기가 드러난 이유는 누군가가 이 결함 있는 위작을 간파했기 때문이 아니라 위조범이 스스로 자백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체할 수 없는 페르메이르의 걸작을 나치에게 판 것은 교수형에 처할 일이었다. 반면 위작을 헤르만 괴링에게 판 것은 용서할 만할 뿐 아니라 칭찬받을 만했다.
 

저명한 전문가들도
감정 때문에 속는다

그래도 이런 의문이 남는다. 아브라함 브레디우스 같은 전문가가 어떻게 그토록 투박한 위작에 속을 수 있을까? 그리고 통계에 대한 책이 왜 서두에 수치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이 두 질문에 대한 답은 같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해석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감정이 전문성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웠다”는 브레디우스의 말은 아쉽게도 정확했다.
누구도 브레디우스보다 뛰어난 기술이나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판 메이헤런은 브레디우스의 기술과 지식을 약점으로 바꾸는 방법을 알았다.

판 메이헤런이 브레디우스를 속인 방식을 분석하는 일은 미술사에 대한 각주보다 훨씬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즉, 우리가 왜 필요 없는 물건을 사는지, 왜 잘못된 상대와 사랑에 빠지는지, 그리고 왜 우리의 믿음을 저버릴 정치인에게 투표하는지 설명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는 통계적 주장을 너무나 자주 믿어버리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판 메이헤런은 예술적 천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뭔가를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때로 속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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