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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슈퍼 팩트>

05. 독재자들의 통계 취급 요령

by BOOKCAST 2022.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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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의 통계 취급 요령

 
제임스 스콧(James C. Scott)은 권위 있는 책인 《국가처럼 보기(Seeing Like a State)》에서 국가가 수집하는 통계 정보는 중요한 지역적 세부 사항을 제외하기 때문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토지와 관련하여 복잡한 관습이 있는 동남아시아의 한 농촌 공동체를 상상해 보자. 모든 가구는 대략 일할 수 있는 구성원의 수에 비례하여 해당 토지를 경작할 권리가 있다. 수확이 끝난 다음에 해당 토지는 가축을 먹일 공용지가 된다.
 
또한 모두 장작을 모을 수 있다. 마을 제빵사와 대장장이는 더 많이 모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국립 토지 등기소의 조사원이 찾아와서 “이 땅은 누구 것인가요?”라고 묻는다. 그에 답하기는 그리 간단치 않다.
 

국가통계는
과연 믿을 만한가?

이렇게 틀리거나,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세계관을 갖는 것은 문제다. 스콧은 국가가 강한 힘을 지녔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오해는 종종 물리적 형태를 띤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의도는 좋지만, 지역적 지식을 간과하고 지역적 자율성을 저해하는 서투르고 억압적인 근대주의적 시책을 만들게 된다.
 
어쩌면 짜증 난 토지 조사원은 기록장에 해당 토지의 소유권이 지역 정부에 있다고 쓸지도 모른다. 그리고 두어 해 후 마을 사람들은 팜오일 농장을 만들기 위해 해당 토지가 개간되는 것에 놀랄 수도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 즉, 정부는 명백히 악의적일 수 있다. 이때 최악의 사례는 매우 파국적일지도 모른다. 이 점은 정부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가져야 하는지 우리가 결정을 할 때에 적절히 반영되어야 한다.
 
히틀러나 마오쩌둥 또는 스탈린은 자국에 대해 덜 아는 것이 국민에게 더 낫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그들이 해를 덜 입히지 않았을까?
정부가 우리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통제력을 발휘할 유혹을 더 많이 느낄 것이라고 우려하는 일은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 주장은 언뜻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공산주의 동독부터 현대 중국까지 대중 감시와 인구 통제에 관심을 가졌던 정부들은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독립적인 통계기관과는 매우 다른 수단을 활용하고, 전혀 다른 데이터를 수집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독재자들은 대부분 탄탄한 통계를 수집하는 데 관심이 없거나 애당초 통계를 수집하고 분석한 다음 적절히 활용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편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도 정부가 통계를 집계하지 않으면 국가 운영은 근거를 잃는다. 만약 통계를 조작하면 진실은 증발할 것이다.
 



통계 데이터가 아예 없거나
통계 책임자를 사형시키거나

1950년대 말에 공산주의 중국의 대약진 운동 때문에 발생한 파국적인 기아 사태를 생각해 보라. 당시 사람들은 나무껍질, 새똥, 쥐까지 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2,000만 명에서 4,000만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이 재난은 농업 생산량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서 더욱 악화했다.
 
수많은 사망자를 집계하기 시작한 공식 통계는 폐기되었다. 마찬가지로 스탈린은 1937년에 실시된 소련의 인구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게 막았다. 그가 이전에 발표한 것보다 인구가 적게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인구 감소는 그 자체로 모욕이었을 뿐 아니라 스탈린의 폭정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수백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셈이었다. 소련 인구를 정확하게 집계한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인구조사를 이끈 통계학자 올림피 크비트킨(Olimpiy Kvitkin)은 사살되었다. 그의 여러 동료도 같은 운명에 처했다.
 
이는 정확한 통계 정보가 압제에 꼭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전체주의 통치자의 행동이 아니다. 나치 독일은 데이터를 활용하여 국가 기구를 뒷받침하려는 야심이 강했다. 그들은 최신 기술인 천공카드 기계를 이용해 전체 인구를 확인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애덤 투즈(Adam Tooze)가 《통계와 독일(Statistics and the German State)》에서 주장한 대로 나치 치하에서 실제로는 통계적 기준이 무너졌다. 투즈는 “실행할 수 있는 어떤 통계 시스템도 고안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프라이버시・기밀성・독립성이라는 공식 통계의 전통은 나치 프로젝트에서는 대단히 낯선 것이었다. 그래서 정치적 압력과 분파 투쟁으로 기존 시스템마저 거의 붕괴했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이터는
결국 통계다

이 모든 점에서 볼 때 나는 제임스 스콧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며(스콧의 생각에 대해서는 나의 책 《메시》에서 더욱 자세히 다뤘다), 존 카우퍼스웨이트 경에게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국가는 겸손해야 한다. 관료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 조감도는 너무나 원대하고 포괄적이어서 전능의 착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영국 정부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존 경의 전략은 50년 전 홍콩에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홍콩은 거대 정부가 유행하던 제국주의 강국이 쇠퇴기에 보유하고 있던 식민지라는 아주 특이한 사례에 속했다. 그래서 정부의 모든 간섭은 9,600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이뤄졌다. 이는 드문 상황이었다.
 
따라서 기본적인 통계를 수집하지 않는 전술은 오직 전제정치 체제나 자유방임적 정권에서만 타당하다. 사실 이런 가능성에 호감을 갖는 사람은 아주 적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정부가 행동에 나서기를 바란다.
 
정부가 행동하려면 통계 같은 정보가 필요하다. 또한 국가가 수집한 통계는 범죄・교육・인프라를 비롯한 다른 많은 문제와 관련된 정책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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