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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슈퍼 팩트>

02. 100년에 단 한 번 발행되는 신문의 헤드라인

by BOOKCAST 2022.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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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에 단 한 번 발행되는 신문의 헤드라인
 
1965년에 노르웨이 사회과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과 마리 루게(Mari Ruge)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건 바로 우리가 “뉴스”로 간주하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는 빈도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었다. 즉, 대다수 청중이 매일 또는 두어 시간마다 뉴스를 확인한다는 사실을 아는 언론 매체들은 자연히 해당 시간대에 발생한 가장 눈길을 끄는 사건을 보도한다.
 

너무나 빠른
오늘날의 뉴스

금융 뉴스를 예로 들어보자. 블룸버그 TV의 화면 하단에 흘러가는 비즈니스 ‘단신’과 《파이낸셜 타임스》 (나의 직장)의 ‘일간’ 뉴스 그리고 《이코노미스트》의 ‘주간’ 뉴스는 크게 다르다. 세 언론 매체가 모두 비즈니스와 경제 그리고 지정학에 비슷한 관심을 두고 있는데도 말이다. 블룸버그는 지난 한 시간 동안 발생한 주가의 급등락을 보도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이코노미스트》에서는 언급될 가치를 얻지 못한다. 주간, 일간, 석간 등 뉴스 주기의 메트로놈은 뉴스가 될 만한 것의 속성을 바꾼다.
 

25년마다
발행되는 신문

이제 훨씬 느린 뉴스의 리듬을 상상해 보자. 가령 25년 주기로 발행되는 신문이 있다고 치자. 이 신문의 최신판은 어떤 뉴스를 실을까? 아마 희망차거나 우울한 새로운 소식들로 가득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과 월드와이드웹 그리고 스마트폰의 부상, 알카에다의 등장과 리먼 브라더스의 몰락을 다룰 것이다. 런던의 살인사건 발생 건수가 줄었지만, 뉴욕보다는 적게 줄었다는 범죄 관련 단신 기사도 실릴 것이다. 그러나 런던에서 살인극이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은 한 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관점은 성급하게 반응하는 언론 매체에서만 타당성을 지닐 것이다.
 

극도의 빈곤에 처한 세계 인구 극심한 빈곤이란 하루에 ‘1.90국제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국제달러’는 국가 간 물가 차이와 시간 경과에 따른 물가 변화(인플레이션)에 따라 조정된다.
 


 
50년마다
발행되는 신문

50년 주기 신문은 어떨까? 젊은 경제학자로서 ‘아워 월드 인 데이터(Our World in Data)’ 웹사이트를 만든 맥스 로저(Max Roser)는 갈퉁과 루게에게 영감을 얻어서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로저는 각각 1918년, 1968년, 2018년에 발행된 신문을 상상한다. 이 신문에는 당대의 일간신문이 보기에 경천동지할 일도 아예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반면 1면부터 세상에 일어난 모든 거대한 변화가 실릴 것이다.
 
2018년에 발행된 50년 주기 신문의 1면에는 어떤 내용이 실릴까? 한 가지 가능성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다. 가령 “휴! 전 세계가 핵전쟁으로 인한 멸망의 위기를 피하다!” 같은 것 말이다. 1968년 판의 독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핵폭탄 발명과 본격적인 개발 과정, 일본에 투하되어 증명된 괴멸적인 위력, 훨씬 강력한 수소폭탄으로 구성된 방대한 무기고 같은 핵무기의 역사를 읽을 것이다. 그리고 강대국들이 한국전쟁과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고 뒤이어 베를린 상공에서 최소한 두 번 이상 핵전쟁 발발 위기를 겪었다는 여러 기사를 불안한 눈으로 읽을 것이다.
 
1968년 이래 반세기 만인 2018년의 신문을 펼쳐 든 독자의 감상을 유추해보자. 저들은 20세기 냉전이 핵무기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채 그냥 끝났다는 사실을 무척 대단한 뉴스로 여길 것이다. 어떤 일간지도 50년 동안 단 한 번도 “오늘 수소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다”라는 헤드라인을 내보내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또는 어쩌면 편집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온실효과에 대한 초기 연구 결과는 1968년 판에 실릴 가치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2018년 판은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즉, 천연가스나 석유 또는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태우면 대기의 성분이 바뀌어서 열을 가두게 된다고 설명해야 했을 것이다(헤드라인: “세상에! 석탄을 태우는 것은 끔찍한 발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 설명은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그래프를 수반했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짧은 기간만의 데이터로 보도하기가 어렵다. 연간 기준으로 보면 지구의 기온은 오르내린다. 그래서 기온이 오른 해와 거의 같은 수로 내린 해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의심을 만들어낼 재료가 된다. 그러나 50년 주기 신문은 암울한 뉴스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지구의 기온은 어떤 척도를, 어느 연도 사이를 살피느냐에 따라 1960년대 이후 약 0.75°C 올랐다.
이처럼 올바른 관점에서 보면 지구가 더워지는 추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100년마다
발행되는 신문

100년 주기 신문은 어떨까? 이번에도 관점이 바뀐다. 독자들이 1918년에 마지막으로 신문을 봤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하는 기적을 머리기사로 실을 수 있다. “아동 사망률이 8배나 감소했다!”라고 말이다. 전 세계에서 태어난 100명의 아이를 무작위로 선정한 다음 만 5세 때 입학시키는 학교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1918년에는 개학일에 68명만 등교에 성공했을 것이다. 32명은 5살이 되기도 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결코 1914~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나 1918년 스페인 독감 발생에 따른 일시적인 재난 때문이 아니었다.
 
1900년의 통계는 더욱 나빴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96명의 아이가 안전하게 개학일에 등교할 것이다. 취학 연령이 되기 전에 사망하는 아이는 네 명뿐일 것이다. 이 아이들은 전 세계에서 선정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거기에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고립되어 있고, 가장 분쟁이 심한 나라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놀라운 진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세계 인구 민주주의란 Center for Systemic Peace(2016)의 Polity IV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정치체제로 정의한다.
 



200년마다
발행되는 신문

200년 주기 신문의 경우 편집진은 또 다른 관점을 취할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라고 헤드라인을 뽑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은 많다. 수입이 하루 1.9달러 미만이라는 세계은행의 정의에 따르면 현재 6억 명에서 7억 명 사이의 사람들이 소위 극빈층으로 살고 있다. 이는 세계 인구의 거의 10분의 1에 해당한다. 그러나 19세기 초에는 거의 모두(20명 중 19명) 빈곤 상태에서 살았다. 이는 놀라운 진보이며, 한발 물러서서 관점을 바꿔야만 그 사실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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