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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생각의 보폭>

02. 친구가 있어도 너무 외로워요!

by BOOKCAST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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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로워도 나쁘지 않다’ ‘친구가 있어도 외로울지 모른다’고 말해준다. 그 말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반발하는 사람도 있는데, 결국 자신의 선입견이 고민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친구를 어떻게 생각할까?

본디 ‘외롭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친구가 없어서 고민하는 사람은 친구가 없는 상황이 곧 외로운 상태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나는 저 사람이 싫어요’라고 말하면 될 것을 ‘저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에요’라는 말로 비난하기도 한다. 그냥 ‘가엽다’고 말하는 게 좋을 테지만 그러면 얕잡아보는 말처럼 들릴까? ‘가엽다’고 하든 ‘외롭다’고 하든 정작 당사자에게는 정말이지 괜한 참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외로운 사람’이라는 말은 쓸데없는 참견으로, 의미도 모른 채 사용되고 있다. 어쩌면 정작 그렇게 말하는 본인이 ‘외로운’게 아닐까?

친구를 자신의 외로움을 해소해줄 존재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자신도 친구의 외로움을 해소해줄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상대는 자신을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 그저 그런 얘기다. 달리 말하면,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을 친구로 여긴다는 얘기다.

 

 

 

 

친구라는 관계도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라고 계약을 맺듯이 명백히 판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에 지나지 않고 그 범위도 역시 애매모호하다. 냉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러하다.

여하튼 ‘친구를 원한다’는 말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우리는 친구야’ ‘친구는 좋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는다. 나는 내 친구와 이야기할 때 ‘친구’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말로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는 게 왠지 어색하다. 따라서 친구라는 의식조차 없기에 ‘누가 내 친구인지’를 잠시 생각하지 않으면 떠올릴 수 없다. 친구를 소중히 여기자고 생각한 적도 없고, 행동 판단에 있어 친구가 이유였던 적도 없다. 예컨대 ‘A씨니 이 정도는 참자’거나 ‘B씨에게는 할 수 있는 만큼 하자’며 개개인에 대하여 생각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친구이니까’라는 발상과는 무관하다. ‘친구라면 이래야 한다’는 구체적인 규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분명히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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