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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오늘 한잔?>

02. 왜 술에 취하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까?

by BOOKCAST 2020.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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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바이스 가키기 류스케
자연과학연구기구 생리학연구소 교수


뇌의 전두엽, 소뇌, 해마는
알코올의 영향을 받는다.


취하면 우습고 엉뚱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귀에 딱지가 앉을 때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 될 것을 굳이 걸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등등…….

술 취했을 때만 나오는 이러한 행동은 사실
 뇌와 알코올의 기묘한 관계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몸과 뇌의 작용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연구기구 생리학연구소의 가키기 류스케 씨에게 물어보았다.

“뇌에는 유해 물질을 차단하는 ‘혈액 뇌관문’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뇌의 벽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인데, 분자량 500이하의 물질과 지용성 물질만 이 벽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알코올(에탄올의 분자량은 46.07)은 뇌관문을 수월하게 통과해 뇌 전체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킵니다. 그래서 이러한 행동들이 일어나는 것이죠.”

가키기 씨는 전두엽, 소뇌, 해마가 알코올의 영향을 쉽게 받는다고 한다.

“전두엽은 인간의 사고와 이성 제어, 소뇌는 운동 기능 조절, 해마는 기억 보존을 담당합니다. 취했을 때만 나타나는 이러한 기행들은 이 세 가지 부위의 기능이 저하된 탓입니다.”


만취로 전두엽이 마비되면
‘뒷담화’가 하고 싶어진다?


“평상시 뇌는 ‘이성의 지킴이’라고 할 수 있는 전두엽 덕분에 이성적인 행동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일단 알코올이 들어가면 점점 그 역할이 느슨해지면서 컨트롤 기능이 떨어지죠.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은 뒷담화를 하거나 비밀을 누설하고,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해지지요. 초기 단계에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같은 뇌 호르몬이 흥분 작용을 일으켜서’ 그렇다는 설도 있는데, 평소에 절대 하지 않을 말을 하는 것은 전두엽이 마비되기 시작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행동입니다.”

사람마다 행동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대포로 언성을 높이고, 저질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굳이 먼 거리를 걸어가는 등의 이상 행동을 하는 것은 전두엽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할수록 전두엽이 이성을 억제하는 힘은 점점 약해진다고 한다. 술자리의 단골 메뉴인 ‘뒷담화’도 여기에 해당한다.

알코올로 인해 자신의 임무에서 ‘해방된’ 전두엽은 사람을 어마어마한 수다쟁이로 만든다. 그나마 남에 대한 비난이나 자기 자랑에서 멈추면 다행이다. 만취한 상태에서는 거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때 관여하는 것은 소뇌이다. 소뇌는 평형 감각, 운동과 행동의 섬세한 움직임, 지각 정보 등을 담당하는 부위이다.

“알코올로 인해 소뇌의 기능이 저하되면 운동의 정교함과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갈지자로 걷고, 혀가 꼬이고, 스마트폰을 제대로 조작하지 못하는 등 누가 봐도 한눈에 ‘만취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겨도
집을 잘 찾아가는 이유?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경험하는 것이 바로 ‘기억의 망각’이다. 술 마신 다음 날, ‘2차 술값을 누가 냈지? 내가 냈던가?’ 하고 불안해질 때가 있다. 나중에 함께 마셨던 사람에게 “멀쩡하게 얘기도 했고 술값도 먼저 계산했더라고”라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정작 당사자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수수께끼의 열쇠는 해마가 쥐고 있다.

“해마에는 단기 기억을 남기고, 그것을 장기 기억으로 바꾸는 두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단기 기억은 새로운 사항을 일시적으로 기억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컴퓨터 키보드로 데이터를 입력한 후 그것을 저장하지 않고 전원을 끄는 것과 같습니다. 취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제대로 술값을 계산하고도 기억을 못하는 것은 ‘이미 말하고 행동했다’라는 기억을 저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가키기 씨는 해설한다.

그래서 술에 취하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만취한 상태에서는 자기가 방금 한 이야기는 기억을 못해도, 술자리가 끝난 후에 집은 제대로 찾아간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집을 목적지로 설정해둔 것처럼 말이다. 왜일까.

가키기 씨는 ‘장기 기억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추억 기억’ 또는 ‘에피소드 기억’이라고도 하는 장기 기억은 뇌에 오래 머무는 기억입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매일 반복해 다님으로써 장기 기억으로 고정됩니다. 매일 기억의 격납고에서 끄집어내는 내용이기 때문에 취한 상태에서도 금방 생각나는 거죠.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집에 제대로 찾아갈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가령 여행지나 출장지에서 술에 취하면 숙소를 못 찾아가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목적지와 경로가 장기 기억에 보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뇌와 알코올의 관계성을 이해하면 취해서 하는 모든 기행을 설명할 수 있다. 혹시 술에 취한 당사자는 실수라도 저질렀다면 ‘술자리였으니까’라며 관대하게 웃어넘기고 싶을 것이다. 단, 취하지 않은 사람은 냉정한 눈으로 당신의 취중 모습을 관찰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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