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스쿠버다이빙 어드밴스 자격증이 있다. 스쿠버다이빙 입문자가 따는 첫 번째 자격증이면서 최대 수심 18m까지 다이빙할 수 있는 오픈 워터 자격증은 2012년 제주도에서 취득했고, 그해 보라카이에서 오픈 워터 자격증보다 한 단계 위인 어드밴스 자격증을 취득했다. 수심 30m까지 다이빙할 수 있는 어드밴스 자격증까지만 있어도 거의 대부분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 접근이 허용된다.
2012년 이후로 1년에 한 번, 적어도 2년에 한 번 정도는 아내와 함께 스쿠버다이빙 여행을 떠났다. 보라카이, 보홀 발리카삭은 결혼 전에 다녀왔고, 호주의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태국의 시밀란은 결혼 후에 다녀왔다. 아내는 다음 다이빙 포인트로 몰디브를 가고 싶다고 했는데, 일단 코로나가 진정돼야 한다.
사실 아내는 아직도 수영을 하지 못한다. 나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긴 한데, 아내는 물속에서 숨을 참지 못한다. 워터파크에서는 가슴까지의 깊이가 들어갈 수 있는 한계이고, 바닷가에서는 튜브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잠깐이라도, 정말 1초 정도라도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생기면 물을 먹는다.
“잠수할 때는 숨을 참아야지!”
이런 말은 아내에게 의미가 없다. 물속이든 물 밖이든 아내는 숨 참는 법을 모른다.
스쿠버다이빙을 함께한다고 했을 때 내심 놀랐다. 수영을 못하는데 스쿠버다이빙이라니! 절대 무리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공포심이 든다면 바로 포기하기로 하고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기로 했다. 수업은 우리 둘 이외에 40대 여자분까지 셋이 시작했다. 남편이 TV 여행 프로를 담당하는 PD여서 함께 여행을 많이 다녔고, 그렇게 사는 게 행복한 활동적인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분은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는 도중, 물속에서 숨이 안 쉬어진다고 포기했다. 셋 중 가장 먼저 포기할 것 같았던 아내는 결국 자격증을 따냈다. 자격증을 받는 날, 난 정말 네가 끝까지 해 낼 줄 몰랐다고 했더니 아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쿠버다이빙은 숨 안 참아도 되잖아.”
몇 년 전, 저렴하게 승마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평생교육원에서 두 달 과정으로 승마 초급반이 개설되었다. 수강료가 저렴해 경쟁률이 치열했지만 아내는 그 경쟁률을 뚫어냈고, 우리는 승마를 배울 수 있었다. 말을 탄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초급반, 중급반, 심화반을 거쳐 지도자 자격증까지 땄다.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말 타는 장면이 나오면 ‘등자 길이가 너무 길면 불편할 텐데.’ ‘고삐를 너무 넓게 잡고 있는 거 같지 않아?’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는 아내는, 지금도 자전거를 못 탄다.
아내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항상 함께하고 싶어 했다. 해보다가 포기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처음부터 거부하지는 않았다. 수영을 할 줄 모르면서 스쿠버다이빙을 도전했고, 자전거 보조 바퀴가 없으면 균형을 못 잡는데 말 위에 올랐다.
“당신과 같이하지 않았으면 못 했을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가 할 수 있었던 건, 혹은 하려고 했던 건 ‘항상 무엇이든 같이한다’였던 것 같다. 아내는 그게 당연한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연애 시절의 난 함께할 수 있는 것과 혼자 해야 하는 것이 구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고민이나 걱정 같은 안 좋은 일은 혼자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퇴사 고민을 말하기가 어려웠다. 이건 함께할 수 없는, 나 혼자 처리해야 하는 일이었다. 혼자 하더라도,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했으면 좋았으련만 얼굴에, 표정에, 행동에 다 티가 났다. 설명이 없어 납득이 안 되는 이런 부정적인 신호는 아내의 오해를 불렀다. 만난 시간이 오래돼서 애정이 식었는지, 연애만 즐길 뿐 애초에 동반자로 여긴 적은 없는 건지 같은 온갖 안 좋은 생각들이 아내를 괴롭혔다. 작정하고 캐묻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 맞았다는 걸 확인하는 일이 될까 두려워 아내는 부정적인 신호의 원인 파악을 계속 뒤로 미뤘다.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한참이나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섣불리 바로잡으려 하지 못했다.
술안주가 양대창이었던가 잘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둘 다 많이 취했던 어느 날, 둘을 괴롭혀오던 문제가 어이없이 풀려버렸다. 고민이 얼굴에, 표정에, 행동에 티가 나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고, 하고 있는 고민의 내용도 나만큼 잘 감추지 못했다. 내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하긴 했다. 애정은 식지 않았고, 동반자이고 싶어서 했던 나의 고민이 전혀 다른 뜻이 되어 아내를 괴롭힐 줄 몰랐다.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나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돈을 벌 다른 방법을 찾고 있지만 아직 답을 구한 건 아니야. 근데 그 새로운 밥벌이가 뭐가 되든, 아마도 지금만큼 벌지는 못할 거야. 어쩌면 그나마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난 점점 가난해질 건데, 혼자였다면 그게 걱정이 되진 않겠지만 너와 함께라는 건 다른 문제니까.
주저리주저리 떠오르는 대로 말하는데 아내가 말을 끊었다. 아니, 소리를 질러서 말이 끊겼다.
“내가 먹여 살리면 되잖아!”
깜짝이야. 아내가 그렇게 성량이 풍부한지 몰랐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런 반응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몇 개월째 나를 깔아뭉개고 있던 문제가 아내에게는 ‘그깟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게 윈윈(win-win)인 건가. 아내는 금세 표정이 밝아졌고, 난 막혔던 게 뚫리는 것 같았다. 먹여 살릴 수 있는 기간이 최대 몇 년까지인지는 그 외침에 포함되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웠지만, 뭐, 나도 평생 아내에게 빌어먹고 살지는 않을 테니까. 아내에게 내가 번듯한 직장인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따라와요. 기다리고 있을게요’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지금까지도 ‘내가 먹여 살리면 되잖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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