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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디자이너의 작업노트>

04. 마스킹 테이프와 그림자를 이용한 타이포그래피 작업

by BOOKCAST 202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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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Offline)
 
POWER(WOMEN)


현재 운영하고 있는 트라이앵글-스튜디오에서는 1년에 1, 2회 정도 학생 인턴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별도의 모집 공고는 없으나 감사하게도 국내외 디자인을 공부하는 많은 분들이 문의를 주신다. 덕분에 그동안 꽤 많은 친구들이 오고 갔다. 보통 두어 달 정도 함께 하는데 실무를 진행하기보다는 워크숍에 가까운 형태로 개인 작업들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것에 무게를 둔다. 그중 2018년 고제리 학생 인턴과 함께 했던 작업 중 하나인 마스킹 테이프와 그림자를 이용한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소개한다.
 
자유 주제 프로젝트의 아이디어와 재료들은 거창한 것보다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것들 중심으로 주변의 것으로부터 많이 얻는 편이다. 컴퓨터 안에서만 해결하기보다는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로 눈을 돌려 본다. 서랍을 열어 가득히 쌓인 잡다한 물건을 찾아보기도 하고 멍하니 풍광을 보며 자연 현상에서 모티브를 찾기도 한다. 다음의 작업은 형식을 타이포그래피로 먼저 결정하고 임했던 작업이다. 글자를 만들 수 있는 물성을 지닌 재료를 찾아보기로 했고 학생 인턴은 마스킹 테이프를 재료로 정했다. 마스킹 테이프는 쉽게 떼었다 붙일 수 있는 특성과 함께 자유롭게 모양을 만들 수 있어 재료로서 적합했다. 다만 단순히 글자의 모양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고민하던 차에 당시에 맑은 날이 이어지고 햇볕이 좋아서 그림자를 가변적인 요소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았다. 마스킹 테이프로 입체적인 글자를 만든 뒤 그림자에서는 다른 글자가 읽힐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았다.


시작은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해 다양한 알파벳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지면에 붙이는 부분을 다르게 설정하면 알파벳의 모양을 자연스럽게 다른 모양으로 디자인할 수 있었다. 마스킹 테이프가 지면과 어느 정도의 이격을 가지는 편이 그림자를 활용하기 좋았다. 그림자에서 글자의 모양이 발견될 수 있도록 같은 글자도 다른 모양으로 만들었다. 빛의 방향에 따라 같은 ‘S’에서도 그림자가 ‘U’로 보이기도 하고 ‘G’를 찾을 수도 있었다. 그림자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모양을 촬영해서 기록하고 글자를 선별했다. 글자와 그림자를 매칭하는 과정이 까다로웠지만 최종적으로 글자의 모양에서는 ‘POWER’, 그림자의 모양에서 ‘WOMEN’을 찾아 메시지를 담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해가 비춘 방향을 표시하고, 리소 인쇄로 포스터를 제작했다. 만약 당시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면 빗물의 맺힘이나 얼룩을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눈이 왔다면 눈으로 글자를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가능성을 열어 두면 적절한 제약과 함께 새로운 방향성이 보인다. 오프라인 작업의 즐거움은 그 열린 전개에서 결과를 발견하는 일이다.

POWER(WOMEN), 2018 리소 인쇄로 완성한 포스터 ⓒ고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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