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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디자이너의 작업노트>

05. 제작과 관련한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한 인쇄 감리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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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 감리(Print Inspection)

인쇄 매체의 경우 최종 인쇄 및 제작에 앞서 인쇄 감리를 최대한 진행하려는 편이다. 인쇄되는 종이나 원단의 소재에 따라서 같은 컬러라도 발색이 다르고 인쇄기를 다루는 담당자의 기준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현장 감리는 제작과 관련한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색상뿐 아니라 유실된 데이터는 없는지, 혹여 오버프린트된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간혹 기관 로고나 전달 받은 데이터가 오버프린트 적용된 경우가 있다.) 예상치 못한 인쇄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디자이너에게 인쇄 현장을 이해하고 감리 보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때문에 디자인 감리가 처음인 디자이너들은 꼭 동행하여 인쇄소를 경험케 한다. 특히 이미지가 많은 도록이나 다양한 컬러가 적용되는 패키지 디자인 등은 처음에 맞춘 색을 기준하여 대량 양산하기 때문에 생산의 지속성을 위해 꼼꼼한 감리가 필요하다. 가급적 인쇄 감리 과정을 담당자와 함께 진행하는 편이지만, 생산을 추후에 진행하거나 스케줄이 맞지 않는 경우 별색을 기준하여 클라이언트가 별도로 진행하기도 한다.

인쇄에 필요한 다양한 장비들이 뒤섞인 인쇄소 현장

 


을지로와 충무로 일대에는 국내 인쇄와 관련된 수많은 업체들이 모여 있다. 종이를 파는 지류사부터 잉크를 파는 곳, 출력소, 인쇄소 등 골목마다 마치 미로처럼 크고 작은 업체들이 즐비하다. 인쇄소 골목에 들어서면 특유의 잉크향이 코를 찌르고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주변에 가득하다.

지금은 익숙하고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인쇄도 뭣도 아무 것도 모르고 디자인을 시작하던 시절, 모든 것이 낯설고 심지어 무서운 기분까지 들었던 이 동네를 처음으로 헤매던 때가 기억난다. 마땅한 인쇄소를 찾기 위해 며칠 동안 수십 군데의 업체를 들러 견적을 받고 그중 맘씨 좋아 보이는 부장님이 계셨던 한 곳과 인쇄를 하기로 했다. 작업 데이터를 전달한 후 인쇄소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먹이 4도로 들어갔다고 ‘먹 백’으로 변환해서 전달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응? 먹 백? 먹 빽? 사실 별색과 분판은 커녕 웹 작업과 인쇄 작업을 RGB와 CMYK 정도로만 구분했던 그때인지라 ‘먹 백’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묻지도 못하고 전화를 끊고 난 뒤 작업 데이터를 다시 열어 한참을 쳐다봤다. 그제서야 내가 RGB 모드에서 검정색을 선택하듯 색상환 모서리 끝을 스포이트로 찍어 4도가 섞인 검정(C75%, M68%, Y67%, K90%)을 지정한 것을 확인했고 인쇄에서는 이 방식이 잘못된것임을 알았다. 1-2% 차이로 미세한 컬러를 분별해야 하는 컬러 지정은 정확한 수치 값이 필요하며, 먹판만 별도로 제어할 수 없어 인쇄에서의 검은색은 먹100%로 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데이터를 다시 먹 백(K100%)으로 수정해서 전달하고 나서야 겨우 인쇄와 현장 감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너무 기본적인 부분이지만 당시에는 물어볼 대상도 없었고, 인쇄 용어들도 낯설어 혼자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보니 실수 투성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경험은 내게 4도 컬러를 각각 정확한 수치로 입력하여 지정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었다.

인쇄를 목적으로 하는 작업은 모니터 화면을 믿지 않는다. 화면에서 보이는 데이터가 결코 마지막이 될 수 없다. 질감과 색감, 펼치고 만져 보는 최종 인쇄물을 손에 쥐었을 때가 그 마지막이다. 제작 전 인쇄 감리는 인쇄소와의 긴밀한 협력과 제작 소통을 통해 실수와 오차를 줄이고 미세한 차이를 조정하여 최종 디자인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단계다. 인쇄소에 데이터만 전달하고 감리를 지나치면 꼭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철컹거리며 인쇄기가 돌아가는 모습, 분판된 CTP판*, 루페(Loupe)*로 핀을 확인하고 색을 맞추는 모습 등 바삐 움직이는 현장을 지켜보면 디자인 외에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더불어 요즘도 토요일까지 쉼 없이 일하며 단면 재단물 인쇄 정도는 다음 날이면 거뜬히 받아볼 수 있는 국내 인쇄소의 노고와 능력에 감사함을 느낀다.

* CTP판 인쇄용 필름 대신 평평한 철판 위에 인쇄될 데이터를 입히는 인쇄판. 도수별로 제작하여 잉크를 묻혀서 인쇄한다.

* 루페 디자인 작업용 확대경으로 인쇄물, 필름의 핀의 위치나 망점 등의 상태를 검사하는 데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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