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내가 앞으로도 평생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관심을 갖는 것, 지켜보는 것, 집중하는 것, 함께하는 것.
아내와 난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 그날은 보통의 여느 날과 다르지 않다. 결혼 후 처음 맞았던 결혼기념일 날, 나는 회식이었고 아내는 야근을 했다. 지금까지 5번의 결혼기념일을 보냈는데, 기억으로는 저녁을 딱 한 번 함께했다. 동네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먹었고, ‘그래도 기념일이니까’ 하며 소주를 곁들었다. 기념은 하지 않지만, 그 날짜를 그냥 버려두기는 뭐해서 집 현관문의 비번으로 살려두었다.
크리스마스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흘려보낸다. 우린 그날을 사람이 너무 많아 거리가 붐비는 날, 밖에 나가면 고생하는 날, 그냥 동네 산책하는 게 나은 날로 여긴다.
“이번 크리스마스 때 어떤 이벤트를 하기로 했어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회사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이벤트의 아이디어를 찾았다. 다른 사람의 지난 크리스마스 이벤트 이력을 뒤졌다. 작년에 했던 이벤트가 반응이 좋았다며 추천하기도 했다. 이런 대화에서는 내가 끼어 보태줄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아내와 나의 생일은 서로 가깝고 여행하기 좋은 봄날이다. 그래서 그때쯤이면 여행 준비를 한다. 2박 3일 정도의 일정으로만 계획해도 둘의 생일을 여행 기간 안에 넣을 수 있다. 어쩌다 보니 생일 여행은 연애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다니고 있다. 이 여행이 우리가 유일하게 특정일을 기념하는 이벤트이다.
연애 초반, 우린 서로 전화나 문자를 자주 하지 않았다. 난 얼굴을 보지 않으며 대화하는 게 불편했고, 그때마다 아내에게 그 어색함을 숨기지 않았다. 차 문을 대신 열어주지 않았고, 공원 벤치의 먼지를 털어주지 않았다. 아내 스스로도 할 수 있는 걸 내가 대신해 주려 하지 않았다.
연애 100일, 200일을 세지 않았다. 이벤트를 준비해서 기념하는 어떤 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 숫자 세기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고, 1000일쯤 되면,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더 빨리 다가오는 기념일이 부담으로 느껴질 것 같은 게 싫었다. 아내와 만나는 건 항상 즐거웠으면 했다.
만나고 헤어질 때 집 앞까지 데려다준 적도 없었다. 늘 서로의 중간쯤 되는 거리에서 인사했다. 아내가 친구를 만나거나 회식으로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집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잘 놀다 들어가. 난 이만 잘게.”
여태껏 서른이 될 때까지 아내는 혼자 잘해 왔는데, 연인이 되었다고 귀갓길을 걱정하며 기다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아내가 서운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서운했겠지. 연애 초반인데. 자신을 대하는 모습으로는 이미 연애 10년 차 정도 된 것 같아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활활 타올랐던 감정이 안정적인 따뜻함으로 바뀌었을 때, 아내에게서
‘변했어. 예전엔 안 그랬는데.’
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내에게 늘 한결같아서 안정적인 사람이었으면 했다. 연애 초반이라고, 모난 걸 숨기며 괜찮은 사람인 척하는 걸 내가 평생유지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평생 해 줄 수 있는 것만 할래.”
나중에 10년이나 20년이 지나더라도 내가 계속 너에게 해 줄 자신 있는 것들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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