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조금은 느려도 괜찮다.
우리가 살아갈 앞으로의 날들이 궁금해진다.
은퇴를 몇 달 남긴 작년 봄. 퇴직일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뎠다. 은퇴까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갔다. 회사 생활하는 내내 프로젝트의 마감 일정에 쫓겼다. 부족한 시간을 야근으로 채워가며 업무와 씨름하다 마침내 끝날 것 같지 않던 프로젝트를 털어내면, 그새 두어 개의 계절이 훌쩍 지나 있었다. 이런 시간을 20년 가까이 보냈다.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건, 전엔 미처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는 늦은 오후, 다시 한번 달력을 열어 은퇴하기까지의 일수를 셌다. 64일이 남았다.
“아. 오전에도 64일 남았었는데. 그대로네.”
그즈음 은퇴 후의 하루하루를 무엇으로 채워나갈까를 상상하는 것이 버티는 힘이 되었다. 지친 하루를 깨우는 비타민이었다.
‘일단 아침에 일찍 공원을 한 바퀴 달려야지.’
‘매일 그림을 그리면 풍경 정도는 그럴듯하게 담아낼 수 있겠지?’
‘언제쯤 외국인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 볼 수 있을까. 영어도 해야 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마음속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바람들을 끄집어 머릿속에 그려보는 건 해도 해도 지겹지가 않았다.
가장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상상은 ‘낯선 동네에서 살아보기’였다. 외국의 낯선 동네에서 몇 달 동안 살아본다는 건 직장을 다니며 힘들게 마련한 고작 며칠 만의 휴가로 떠난 여행으로는 미처 느낄 수 없는, 그래서 아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소망이었다. 그네들의 동네에서 눈을 뜨고, 그네들의 시장에서 장을 봐온 식자재로 밥을 지어 먹고, 그네들의 산책로를 걷고, 그네들의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 이런 그네들과 비슷한 하루하루로 한 달, 두 달을 채워나가는 상상은 가뜩이나 멀게만 여겨지던 퇴직일에 한 발씩 다가가는 걸 더욱 더디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겨울마다 따뜻한 동남아에서 두 달 정도씩 살아보는 거 어때?”
우리가 은퇴 후 한 달에 쓰기로 한 생활비가 250만 원이잖아. 아파트 관리비 같은 고정 비용을 모두 더하면 한 달에 120만 원 정도니까 그걸 제하고 남는 130만 원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는 건데, 그 정도면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데서도 충분히 살 수 있어. 에어비앤비로 싼 숙소 구하고 음식도 직접 해 먹으면 될 거야. 대신 여행 갔을 때처럼 이곳저곳 관광은 못 해. 그냥 그곳의 현지인처럼 살다가 오는 거야. 철새처럼 겨울의 추위만 피하는 거지. 음, 비행깃값이 가장 큰 문제이긴 한데, 그래도 엄연히 외국에 나가는 거잖아. 비행깃값 정도의 예산 초과는 감수해야겠지?
계획한 한 달 생활비만으로 동남아의 나라에서 살아본다는 발칙한 상상에 아내가 힘을 보탰다.
“한 달 이상 외국으로 나가면 그 기간 동안 지역 의료 보험료를 안 내도 된대. 두 달 어치의 의료 보험료면 비행깃값은 대충 되지 않을까? 부족하면 좀 더 아껴 살면 되지.”
한 달에 20만 원 가까이 될 의료 보험료 면제는 생각도 못 했었다. 계획은 의외로 완벽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국에서의 생활비만으로 외국에서 살아보겠다는 건 막상 하나하나 따지고 보니 그렇게 발칙한 것도 아니었다.
올해 겨울은 동남아의 어떤 나라에서 반팔 티와 반바지를 입고, 겨울인데 뭐 이렇게 덥냐는 농담을 던지면서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예년과 마찬가지로,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한국에서 버텨야 했다. 아내와 내가 한 가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었다.
코로나.
처형네는 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장모님과 함께 살았다. 처형이 결혼과 함께 정착해 10년 넘게 살아오던 그 동네는 대중교통이 불편했다. 그 동네에서 처형의 회사까지는 2시간이 넘게 걸렸고, 아침 8시까지 회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새벽하늘을 보며 집을 나서야 했다.
“언니. 교통 편한 데로 이사 좀 가라니까.”
제시간에 퇴근하고도 밤 10시가 되어야 집에 도착하는 언니를 아내는 늘 안쓰러워했다.
“그래야 엄마도 어디 다니실 때 좀 편하게 다니시지.”
얼굴을 볼 때마다 이사 가기를 채근하는 아내의 바람을 들어주기라도 하듯, 처형네는 얼마 전 교통이 좀 더 나은 동네에 새집을 구했다. 처형네의 이사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처형네 집으로 들어올 사람들을 위해 빨리 집을 비워줘야 했고, 새로 이사 갈 집의 사람들이 나가야 비로소 처형네가 새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집을 비우는 시기와 새집에 들어가는 시기가 서로 맞지 않았다. 이리저리 정신없이 조율해 보아도, 두 달의 시간이 붕 떴다. 집을 비우는 건 3월인데, 새집에 들어가는 건 5월이었다. 두 달 동안 임시로 지낼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키우던 강아지까지 데리고 임시로 두 달만 지낼 집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지내셔도 될 텐데. 이참에 우린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거지.”
“그러게. 그때 제주도 가면 좋겠다. 봄 제주도 진짜 좋은데.”
“처형하고 한번 얘기해 봐.”
두 달간 우리 집에서 지내도 되겠냐는 연락은 처형네에서 먼저 왔다. 우리가 미처 제안을 하기 전이었다. 처형은 못내 조심스러워했지만, 우리에겐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 집을 비워줄 두 달간 우리의 숙박비를 지원하겠다는데, 그 좋은 조건을 마다할 리가 없었다.
제주도의 봄은 화려하다. 3월이면 노란 유채꽃이 지천이고, 4월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제주도 남쪽의 작은 섬인 가파도가 청보리로 뒤덮이는 때도 이즈음이다. 내가 아는 한 제주는 봄이 가장 좋다. 다양한 빛깔로 채색되는 봄의 제주.
제주의 낯선 동네에서 두 달간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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