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hodopis and her little gilded sandals
Ancient Egypt
작자 미상 / 기원전 5세기 이전
매춘부에서 왕비가 되다
사실에 바탕을 둔 가장 오래된 신데렐라 이야기는 고대 이집트의 「로도피스의 신발」이다. 신데렐라 서사는 대부분 언제 탄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인 헤로도토스와 스트라본, 그리고 고대 로마 작가 클라우디우스 아에리아누스가 단편적으로 기술해 놓은 것이 남아 있어 탄생 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에리히 아커만은 20세기 초 『고대의 동화집』에서 이 이야기를 재구성해 「아름다운 로도피스」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다만 동화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매춘부라는 것을 생략했다고 한다.
로도피스의 일화에 대해서는 피에르 뒤푸르가 역사적인 검증을 통해 방대한 내용을 담은 『매춘부의 세계사』에서 상세하게 언급한 적이 있다. 또 일본에서는 문예평론가 야마무로 시즈카가 『세계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참고 작품으로 「로도피스의 신발」을 소개한 바 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북그리스(마케도니아) 출신인 도리카는 부유한 가정의 자녀였으나 가족 여행 도중에 해적에게 유괴되고 만다. 그녀는 에게해에 있는 사모스 섬에 노예로 팔려 가는데, 그곳에는 『이솝우화』의 작가인 아이소포스도 노예로 잡혀 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절세미인으로 자란 도리카는 매춘부로 일하다 ‘장밋빛 뺨을 가진 금발 여성’, 즉 로도피스라고 불리며 유명해진다. 그녀는 이후 이집트에 있는 그리스인의 마을인 나우크라티스로 옮겨지고, 부자를 상대로 일하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재능을 가진 로도피스는 그곳에서도 뭇 남성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이후 친절한 어느 갑부 노인이 그녀를 구제하여 자신의 양녀로 삼는다. 그렇게 로도피스는 매춘부의 삶을 청산할 수 있었고 두 사람은 나일강 주변의 대저택에서 함께 살게 된다.
어느 날, 로도피스가 정원에서 목욕을 하기 위해 신발을 벗어 시녀에게 맡긴다. 그런데 웬 독수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로도피스의 신발 한 짝을 발톱에 끼우고서 날아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독수리는 그대로 나일강을 따라 수도 멤피스로 올라가 때마침 야외에서 국가 규정을 논의하던 아마시스 왕의 무릎 위로 신발을 떨어뜨린다. 왕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아름다운 신발과 기이한 사건에 감동하여 신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신관은 호루스 신의 뜻이므로 신발의 주인과 결혼해야 한다고 답한다.

왕은 사신을 파견하여 남은 신발 한 짝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맨다. 마침내 로도피스가 같은 신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신이 그녀의 저택으로 가 후견인인 노인에게 사정을 설명한다. 노인은 로도피스를 놓아 주고 싶지 않았지만 파라오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로도피스는 궁전으로 향한다. 왕은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금방 사랑에 빠졌고 신의 뜻대로 식을 올린다. 그렇게 원래 노예 또는 매춘부였던 로도피스는 왕비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았고, 그녀가 사망한 뒤 왕은 기자의 대형 피라미드 옆에 작은 피라미드를 지어 그곳에 로도피스를 묻었다고 한다.
– 야마무로 시즈카, 『세계의 신데렐라 이야기』 중에서
이 이야기에는 한 가지 버전이 더 존재한다. 파라오가 로도피스에게 청혼하지만 로도피스는 그의 마음을 거절하고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 출신이자 와인 상인인 카락소스와의 사랑을 지킨다. 그 소식을 들은 그리스인들은 로도피스를 극찬한다. 로도피스는 이후 고기를 굽는 용도로 쓰는 여러 개의 쇠꼬챙이를 그리스 델포이 신전에 바쳤다고 한다. 아마도 반이집트적인 그리스인들의 민족주의로 인해, 파라오와의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에서 그리스 신전에 대한 숭배로 결말이 바뀐 듯하다.
이처럼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로도피스의 신발」은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대대로 구전되었다. 필자는 전자의 이야기가 「로도피스의 신발」의 원형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했던 주인공이 해적에게 납치되어 노예 혹은 매춘부라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다가, 호루스 신의 뜻을 받은 독수리의 도움으로 왕비가 되는 이야기 말이다. 이렇듯 ‘왕자와 결혼하는 해피엔딩’은 신데렐라 서사의 완성도를 높여 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고대 학자들이 언급한 매춘부 로도피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여러 지역을 직접 답사하여 수집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역사』라는 저서를 남겼다.
헤로도토스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주변 국가들을 어떻게 보았을까? 당시 지중해 주변의 지도가 재현되어 있는 그림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그림에는 지중해 지역이 꽤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이를 통해 그리스와 이집트, 터키 주변은 서로 교류가 잦았고 공통된 문화권을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지역은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 봤을 때 많이 허술하다.
헤로도토스 시대의 지중해 지도를 재현한 그림
헤로도토스는 이집트로 건너가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때 그는 당시 전해지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고, 「로도피스의 신발」에 나오는 주인공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헤로도토스는 로도피스가 피라미드를 세웠다는 전설과 업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그리스인들은 이 피라미드를 매춘부 로도피스가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도피스가 누구였는지도 모르고 – 알았다면 수천 달란트라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피라미드가 로도피스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리가 없다. – 또한 로도피스가 등장한 시대는 아마시스 왕대에 해당되며 멘카우레의 대가 아님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로도피스는 피라미드를 남긴 제왕들보다 훨씬 뒤에 있는 인물로 트라키 아인이며, 헤파이스토폴리스의 아들이자 사모스인인 이아드몬을 섬기던 노예였고 우화 작가 아이소포스와는 동료 사이였다. ……
로도피스는 크산테스라는 사모스인을 따라 이집트에서 매춘부 일을 했는데 미틸레네 출신인 카락소스라는 자가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그녀를 구제했다. 카락소스는 스카만드로니모스의 아들이며 시인 사포의 오빠다.
이렇게 자유의 몸이 된 로도피스는 이집트에 머물렀고 특유의 요염함으로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 로도피스는 본인 재산의 10분의 1을 소비하여 소의 통구이에 사용할 쇠꼬챙이를 만들어 델포이에 보냈던 것이다. 이 쇠꼬챙이는 지금도 신전 정면에 있는 키오스인의 봉납 제단 뒤에 쌓여 있다.
나우크라티스에는 아름다운 매춘부가 많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로도피스는 그리스인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로도피스 이후로는 아르키디케라는 매춘부가 그리스 안에서 이름을 떨쳤지만 로도피스 정도는 아니었다.
– 헤로도토스, 『역사』 중에서
로도피스를 그리스인의 시각으로 본 헤로도토스는 「로도피스의 신발」에서 로도피스가 파라오와 결혼해 부를 얻는 이야기를 부정하고 있다. 헤로도토스에 이어 스트라본은 기원후 24년에 저술한 『지리학』에서 로도피스를 언급했다. 스트라본 역시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고대 이집트의 옛 수도인 멤피스 근교에 있는 피라미드에 주목했다. 그는 신데렐라 서사의 기원인 「로도피스의 신발」의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다.
로도피스는 아름다운 외모 덕분에 부유한 남성의 눈에 띄어 양녀가 된다. 그녀가 목욕을 할 때 독수리가 신발 한 짝을 물고 날아가는데 파라오가 그 신발로 로도피스를 찾았고, 이를 계기로 로도피스는 기적적으로 왕비가 되었다는 여자 주인공의 신분 상승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 스트라본, 『지리학』 중에서
로도피스의 이야기는 아에리아누스의 저서 『다양한 역사』에서도 소개하고 있으며 이후 고대 그리스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왔다. 그들은 헤로도토스의 해석과는 달리 로도피스의 ‘결혼으로 인한 신분 상승’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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