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odora
Byzantium Empire
작자 미상 / 연도 미상
신데렐라의 실존 인물
지금도 ‘신데렐라 걸’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역사적으로도 실제로 신분이 낮은 여성이 왕비가 되어 사회의 정점에 오른 사례가 있었다. 바로 비잔틴 제국의 황후 테오도라다. ‘실제 사례’라는 사실성을 가지게 되면 사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기 수월하다. 그런 의미에서 테오도라의 이야기는 신데렐라 서사의 성립과 깊은 관련이 있다.
테오도라는 태생적으로 천한 광대 혹은 매춘부라는 신분으로 차별을 받았지만 황제와 결혼하며 황후라는 사회의 정점에 오른 전형적인 신데렐라로 유명하다. 이노우에 고이치의 『비잔틴 황후 열전』에서는 테오도라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테오도라는 곰을 다루는 광대의 딸로, 497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녀는 세 자매 중에 둘째인데 7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고 어머니는 동업자와 재혼한다. 혼기가 차자 테오도라도 광대 견습생으로 원형 경기장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중세 유럽에서 광대는 하층민에 속했다. 특히 젊은 여자 광대는 매춘을 하는 일이 흔했고 차별당하는 존재였다. 영리하고 아름다웠던 테오도라도 배우와 무희로서 무대에 섰는데 알몸으로 공연하거나 매춘을 하기도 한다. 하룻밤에 손님을 30명이나 받았다고 전해진다. 테오도라의 생활은 피폐해졌고 임신 중절도 했지만 결국 미혼으로 아들을 낳게 된다.
이후 그녀는 리비아의 고위 관료와 부부의 연을 맺고 콘스탄티노플을 떠나지만 오래가지 않아 이혼하고 만다. 머물 곳이 없어진 그녀는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서 다시 광대 일을 하며 이리저리 옮겨 살다가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는데, 북아프리카에서 크리스트교 총주교를 만나 회개하면서 단정한 삶을 살게 된다. 테오도라는 광대 노릇을 그만두고 궁전 근처에서 뜨개질을 하며 생활한다.
그러다 520년에 황제 유스티누스 1세의 조카 유스티니아누스와 운명처럼 만나 그와 연인 사이가 된다. 원로원 의원인 그는 테오도라와 결혼하려 했지만 신분이 다른 사람끼리 혼인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장은 혼인식을 올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황제에게 법 개정을 탄원하고, 황제가 그것을 허가하면서 524년 즈음에 정식으로 결혼한다. 유스티니아누스는 황제가 죽은 뒤 후계자로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되었고, 이에 따라 테오도라가 황후 자리에 오르며 하층민이었던 여성이 당시 사회의 최고층까지 올라가는 신데렐라 서사의 전형적인 예시가 탄생한다.
미모가 돋보이던 여성은 마침내 황후가 되어 남편을 도왔다. 532년에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당황하여 도망치려 하는 황제에게 ‘황제의 옷은 최고의 수의’라는 유명한 말로 질타와 격려를 전해 반란을 진압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여걸이었다. 이외에도 빈민과 매춘부들을 구제하고 선정을 베풀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행위는 테오도라의 반평생 경험이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노우에 고이치, 『비잔틴 황후 열전』 중에서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비잔틴 제국의 전성기를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테오도라의 역할이 컸다. 그녀가 황후가 된 후 제국 내에서 테오도라에 대한 악평이나 비난은 없었으며 오히려 오늘날까지도 뛰어난 황후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신데렐라 서사의 특징으로 본다면 테오도라가 황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미모 덕분이었을 것이다.
테오도라의 삶에서 광대와 황후라는 지위의 극단적인 차이는 크리스트교를 찬미하기 위한 일종의 역사적 연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테오도라는 배우로 활약했던 천부적인 재능으로 황후의 역할마저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사람이 신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분이 사람을 만드는 과정을 테오도라의 삶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이야기는 신데렐라 서사의 특성을 온전히 갖추고 있지 않아서 조력자나 신부 시험, 구두로 말미암은 사건은 따로 없다. 다만 그녀가 만난 크리스트교 총주교가 조력자의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테오도라 이야기에 숨은 종교적 배경을 엿볼 수 있다.
역사로 남은 테오도라 황후
아드리아해와 가까운 이탈리아 북동부에 있는 도시,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에 테오도라의 동상이 남아 있다. 작은 성당이지만 이곳에는 6세기에 제작된 테오도라 황후와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모자이크화가 있다. 테오도라는 황제의 대관식에 참석하여 술잔을 내밀고 있고,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황후와 마주보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대신들을 거느리며 대관식을 거행하고 있다. 모두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은 주옥같은 모자이크화다. 이곳은 당시 비잔틴 제국의 영지였기 때문에 황제와 황후의 모자이크화가 제작되어 남겨졌다고 한다.

제작 당시에는 판유리가 없어서 대리석을 얇게 잘라 썼는데, 빛이 들어오는 창문에 끼워져 있는 탓에 성당 안은 항상 어둡다. 덕분에 보석으로 이루어진 테오도라의 모습이 어둠 속에 부각되었고 지금까지도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려진 초상화는 우상 숭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에 의해 수없이 파괴되었지만 당시 비잔틴 제국령이었던 라벤나는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멀리 떨어진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덕분에 기적적으로 모자이크화가 보존될 수 있었다. 이 모자이크화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써 현재는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역사·문화 > <신데렐라 내러티브>'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 우기의 기원_비슈누 신과 물고기 모티프 (3) | 2022.03.04 |
---|---|
04. 이마에 뜬 달_소의 고기를 먹지 말라 (2) | 2022.03.03 |
03. 샹드리용_‘신데렐라’의 줄거리와 가장 비슷한 이야기 (3) | 2022.03.02 |
01. 로도피스의 신발_매춘부에서 왕비가 되다. (3) | 2022.02.25 |
00. <신데렐라 내러티브> 연재 예고 (2) | 2022.0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