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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너 오랫동안 이런 걸 원하고 있었구나>

02. 쏟아진 한 끼, 쏟아진 눈물

by BOOKCAST 2022.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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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의 시간은 행복하면서도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갓난아기는 삼시 세끼만 먹는 게 아니다. 서너 시간 간격으로 분유를 먹여야 하고, 수시로 기저귀도 살펴 갈아줘야 한다. 그러니 엄마인 내가 밤잠을 이어서 잔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 하루하루가 쪽잠이고 선잠이다.

게다가 집안일은 얼마나 서툰지 하루 24시간이 서툰 일과의 사투였다. 저녁은 퇴근한 남편이랑 먹느라 어떻게 준비한다고 해도, 나머지 시간에 나를 위한 식사를 따로 준비한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뱃속이 이런 사정을 헤아려줄 리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강하게 온다. 그런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이었다.

내게도 밥을 줘야 하는데 집에 마땅히 먹을 것이 없었다. 나는 컵라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아기가 자는 틈에 컵라면을 먹을 요량이었다. 물을 끓이고, 조심스레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조금만 있으면 가는 면발이 입안으로 흘러들고, 시원 칼칼한 국물도 한 모금 삼킬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아기가 몸을 뒤척이는 것이 보였다.

‘지금 깨면 안 돼!’

강렬한 내적 외침과 함께 나는 급하게 몸을 틀어 아기에게 향했다. 그러다 그만 컵라면을 치고 말았다.

쏟아진 컵라면.
소중한 나의 한 끼.


뒤척이던 아기는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차라리 아기가 깨서 울었다면 이 상황이 덜 억울했을 거다. 안타깝게도 그 컵라면은 집에 남은 마지막 컵라면이었다. 나는 쏟아진 국물과 라면 줄기를 치웠다. 라면 용기에는 국물과 건더기가 조금 남아있었지만, 그걸 먹자니 기분만 더 처량할 것 같아 모두 싱크대에 쏟아부었다. 싱크대에 쏟아진 라면을 보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기가 깰까 봐 소리도 내지 못하고, 굵은 눈물방울만 뚝뚝 떨구었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은 비슷한 경험이 하나씩은 있을 거다. 서툰 어른이 엄마 노릇을 하려니 실수가 많았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가끔 참아볼 새도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아기를 키우면서 나는 나를 도와주고 지켜주는 친구들, 동네 어벤저스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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