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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01. 인공지능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by BOOKCAST 2022.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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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축구공을 처음 만져본 사람이 오늘 손흥민 선수처럼 드리블과 슛을 한다면? 오늘 골프채를 처음 잡은 사람이 내일 박세리처럼 멋진 샷을 날린다면? 놀라운 정도가 아니라 기적에 가깝다. 그런데 그간 이룩한 인간 지능의 발전이 이 수준에 이른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기원전 3천 년 경에 세계 4대 문명이 시작했다면, 아프리카에서 최초의 인간이 나온 이후 불과 200만 년 정도에 일어난 쾌거다. 지능의 발전은 인간을 생태계 사슬의 꼭대기에 올려놓았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당분간 경쟁자는 없을 듯 보인다. 그러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면서부터 인공지능이 내 일자리를 빼앗고 나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다. 인공지능은 도대체 누구일까? 인공지능은 정말 사람이 되려 할까?

온라인시대가 되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분량의 데이터가 쏟아지고 있다. 정부도 만들고, 민간도 만들고, 기업이나 개인도 만든다. 대학교수의 연구논문, 인터넷에 올리는 글까지 모두 데이터일 만큼 데이터가 아닌 것을 찾기 어렵다. 데이터들이 쌓여 규모가 커진 것을 빅데이터라고 한다. 최근 빅데이터 학습을 통해 정신적 활동을 모방하는 인공지능에 사람이나 기업처럼 법인격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 논의하고 있다. 법률적으로 사람과 같이 취급하자는 것으로,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만 인공지능에 사람 취급을 할 수 있게 법인격을 부여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지 미리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에는 수령 600년을 넘는 소나무가 있다. 1464년,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갈 때 임금의 가마가 이 소나무 가지에 걸릴 뻔했다. 그때 누군가 소리를 지르자 소나무가 그 소리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가지를 번쩍 들어 가마가 지나갈 수 있도록 했다. 그 공으로 이 소나무는 정2품의 장관급 벼슬을 받았으며, 그 나무를 보살피는 데 필요한 땅도 하사받았다고 한다. 사람이 아닌 소나무가 공무원 대접을 받은 것이다. 인공지능도 자신의 행동으로 나라에 공을 세우면 공직을 받을 수 있을까?


과거 노예는 사람이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가치를 법적으로 부여받는다. 사람이 아닌 것에 법인격을 부여한 예로 영국 해상법이 선박에 법인격을 인정한 바 있다. 뉴질랜드 노스 섬 중부에 있는 왕거누이 강은 법인으로 인정받았다. 강을 신성시해온 현지 마오리족의 전통을 받아들인 것이다. 왕거누이 강에는 강을 보전하기 위한 기금이 지급되고, 관리는 마오리족이 맡는다. 인도의 갠지스강도 법인격을 인정받아, 강을 오염시킨 사람이나 기업을 상대로 강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2017년 2월 16일 의결된 유럽연합 결의안은 전자 인격에‘ 향후 법적장치에 대한 영향 평가를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해결 방안을 고려’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인공지능 로봇의 작동에 따른 민사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등의 문제를 다루었을 뿐 인공지능의 법인격까지는 논의하지 않았다.

법인격을 가진다는 것은 법률적으로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의무를 질수 있다는 것이다. 권리를 침해당하거나 지킬 수 없을 때는 형사고소, 고발로 범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할 수 있으며, 피해를 준 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피해를 주면 형사처벌을 받거나 손해를 배상하는 책임을 진다.

일반적으로 법인격을 인정하는 것은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자연인이지만, 공동체 이익을 위해 법령으로 인정한 법인도 사람에 속한다. 이와 달리 앞서 언급한 강에 법인격을 인정한 것은 상징적인 측면이 강해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법인의 기원으로 회사를 보자. 유럽 중세시대, 좁은 지중해를 둘러싼 동서 교역로를 이용해 무역을 독점한 이들은 귀족이나 신흥 상공업 계층이었다. 그러나 십자군전쟁으로 유럽의 기독교와 아시아의 이슬람교 국가가 대립하면서 지중해 무역로가 막히고 말았다. 그러자 대서양을 통한 동서 교역로를 개발했다. 대서양을 통한 무역은 태풍 같은 자연재해나 군사충돌 위험이 심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더구나 먼 바다를 돌아가는 항해여서 큰 비용이 소요되었다. 그래서 국왕, 귀족 가문이나 상공업 계층만 그 비용을 부담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기서 사람처럼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회사를 인정하게 된다.

많은 주주의 출자금을 모아 선박과 인력 등에 투자하고 해외 무역으로 발생한 이익을 주주들에게 투자금액에 비례해 나누어준다. 주주들은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출자금만 잃게 했다. 즉 회사는 인적, 물적 위험을 줄이면서도 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주주총회, 이사회 등 의사결정 기관과 조직, 자본금 요건 등을 갖춰 등기하는 조건으로 회사 명의로 사람처럼 법률행위를 하고 책임을 지도록 법인격을 부여한 것이다.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주려 한다면, 이에 앞서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부여할 공익적 필요성이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그 개발과 활용에 대규모 자금, 인력이 들어갈 수 있고, 그 성과에 따라 산업과 시장에 많은 수익과 혜택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대부분 기업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된다. 해당 기업이 법인격을 갖고 각종 투자, 수익배분, 사회적 기여 등 필요한 행위를 하면 된다. 굳이 인공지능까지 그런 행위를 스스로 하게 허용할 필요성은 없어 보인다. 따라서 인공지능에 직접 법인격을 부여할 공익적 필요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의 의사결정이나 행동에 대해 인공지능에 직접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는지 보자. 인공지능의 오작동이나 의도적인 행위로 인해 사람의 생명, 신체나 안전에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인공지능을 운영하는 기업에 직접 책임을 물으면 해결된다.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인정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다.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허용하면 인공지능을 활용해 사업하는 기업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줄 수도 있다. 법인격을 가지는 인공지능이 자신의 재산으로 책임지고, 그 인공지능의 운영자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인공지능에 법인격을 줌으로써 법적인 면에서 사람과 같이 취급할지에 관한 논의는 다소 공허해 보인다.

인공지능 로봇 문제를 다룬 미국 드라마 〈웨스트월드〉나 〈휴먼스〉처럼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정신적 활동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고 스스로 생각해 행동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이른다면 인공지능을 법적으로 사람과 같이 취급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정신적 활동을 하고 감정을 가진다면 정신질환을 앓을까? 인공지능이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우울증 등 정신질환과 같은 상태를 모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핑계로 주어진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사람이나 재산에 피해를 주는 사고로 이어진다면 이를 정신질환으로 봐야 할까? 단순한 오작동이라고 해야 할까?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저서 《광기의 역사》에서 정신병을 분석했다. 정신병의 기준은 역사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인류 시대 초기에는 주술사, 무녀의 신들린 목소리에서 신의 뜻을 전달받기도 했다. 그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을까? 중세에는 마녀 취급을 받아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근세로 넘어오면 노동을 하지 않는 부랑자까지 정신병자로 취급했다. 우리나라 형제복지원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는가. 서울 올림픽 등 국가행사를 앞두고 거리를 정화한다는 명목으로 부랑자를 잡아 산속 시설에 감금해 노동을 강요하고 인권을 짓밟았던 사건 말이다. 현재 성적 취향 또는 정체성의 차이로 보는 동성애도 얼마 전까지 정신질환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정신질환을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 달라질 것이고 실제로 기준이 계속 개정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감정을 가지고 사람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기계 오작동으로만 보고 나사 몇 개 뺐다가 끼우거나 리부팅하면 될까? 인공지능에 맞게 감정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 주입해야 할까? 물론 먼 훗날의 일이다. 인공지능에 인격을 부여하는 순간 인간의 가치가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법인격 문제는 지금 당장 처리하려 서둘기보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차분히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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