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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02.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by BOOKCAST 2022.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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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이는 지적 장애가 심합니다. 가르치기 힘들고, 수업에 방해만 됩니다. 학교에 보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편지를 받은 사람은 발명왕으로 유명한 에디슨의 어머니였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인재의 자격으로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스토리, 집중과 조화, 논리와 공감, 의미 부여를 들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활력과 휴식, 현실과 상상, 외향성과 내향성, 개혁성과 보수성을 추가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이 인재 되기를 포기할 것 같다. 어린 에디슨도 그랬을 것이다.

인공지능 최고 인재의 기술적 덕목을 살펴보자. 시장이 처한 문제에 대해 고민과 해결 능력을 갖추고 데이터를 다루며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만드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두뇌 유출이 위험한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두뇌 순환의 시대다. 데이터, 소프트웨어, 콘텐츠, 운영 시스템에 관한 국내외 정상급 전문가와 소통하고 협업해야 한다. 통계학적 소양과 고성능 컴퓨팅 자원 활용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인재는 세상에 비판의식을 품고 모순에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격이어야 한다. 폭발적인 창의력과 실행력으로 기술을 기반으로 한 아이디어를 내고 상품화해서 시대의 물줄기를 바꾸는 그런 사람이다.

무엇보다 창의력이다. 누가 들어도 그럴듯한 아이디어는 평범하고 의미 없다. 조금만 고민하면 누구나 만들어내고 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가 민간 우주여행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몇 명이나 동조했을까 생각해 보라. 아이디어는 황당하거나 미친 짓으로 보일수록 더욱 좋다. 집단지성을 믿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의 말단 주임이 내놓은 멋있는 아이디어는 수많은 회의를 거쳐 임원 단계까지 가면 사족이 붙어 그저 그런 아이디어가 되고 만다. 창의력을 가진 인재도 중요하지만, 창의력이 있는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도 그만큼 중요하다.

다음은 실행력이다. 황당해 보이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행할 힘을 갖추어야 한다. 내가 가진 자원과 남이 가진 자원을 잘 배치해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의 음악 서비스는 핸드폰 사업자와 저작권자의 피 튀기는 싸움과 협력의 결과다. 어떤 난관이라도 뚫고 나갈 힘이 있어야 한다. 여주 시립전화박물관에서 최초로 수출한 핸드폰의 녹색 회로기판을 보았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감동이 우러나지 않는가. 한국 핸드폰 수출의 역사를 시작한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창의력과 실행력이 제대로 발휘되었는지는 그 결과로 시대 흐름이 달라졌는 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증기기관, 철도, 인터넷, 반도체, 스마트폰이 그렇다.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이다.

창의적 인재가 많이 나오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까?
인공지능 최고 인재가 많이 나오려면 교육시설부터 달라져야 한다. 근대화, 산업화를 위해 말 잘 듣는 국민을 천편일률적인 노동력으로 양산하던 시대는 끝났다. 네모 모양의 학교, 낮은 천장, 개성 없는 교복, 사각형 아파트가 모여 있는 곳에서 인재가 나올 수 없다. 그렇다고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를 배출한 차고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왜 수업은 한 시간 단위로 나눌까? 왜 50분 수업에 10분 휴식일까? 왜 현재 세대가 미래 세대를 가르칠까?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이어지는 지친 일상에서 창의적 인재가 나올 수 있을까?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고쳐야 한다.

창의적인 교육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교육과정을 의무화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인공지능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교육은 국민이 미래 사회에 적응하게 만드는 부득이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을 디지털 서비스의 소비자로만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온 국민을 기업가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교육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누가 던진 질문에 정답을 찾는 것에 익숙해 있다.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답이 없어도 좋다. 우리가 질문을 만들어야 하고, 21세기 교육현장이 대한민국의 에디슨을 쫓아내고 있지 않은지 곰곰이 짚어볼 일이다.

데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같은 미술작가들을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데미언 허스트는 실제 상어를 방부제로 처리해 수조 안에 집어넣은 작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트레이시 에민은 자신이 잠을 자던 침대와 침대를 둘러싼 너저분한 실제 물건들을 전시장에 그대로 가져와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자신과 관계있던 남자들의 이름을 잔뜩 적은 텐트를 설치한 미술작품을 보여주기도 했다.

초기에 평단의 혹평을 받은 이 예술가들을 키운 인물이 찰스 사치였다. 영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갤러리와 광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그는 이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작품을 사들였고, 각종 이벤트와 스토리를 입힌 전시회를 열었다. 그 자신도 계속 작품을 비싼 값에 구입했다. 이후 이들 그룹의 작품에 고객 수요가 늘면서 큰 호응을 얻는다. 젊은 예술가들도 키우고, 작품도 소유하고, 경제적인 성공도 거둔 것이다.

우리에게도 찰스 사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시장에서 기술을 알아보고 투자하고 성장할 때까지 모른 체하지 않고 지원해 주는 그런 사람이 절실하다. 그런 사람을 양성하는 시장이 있다면 인공지능 인재들이 발굴되고 그들이 시장에서 우리나라를 인공지능 최고 국가로 만들지 않을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적 장애가 심하고, 가르치기 힘들고, 수업에 방해만 되는 아이가 전설적인 발명왕이 된 것은 자신의 남다른 창의력과 실행력이 우선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를 보듬고 오히려 용기를 준 어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를 키워낸 찰스 사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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