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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생각의 천재들>

02. 알몸으로 쓴 소설

by BOOKCAST 2022.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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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아무것도 직관하지 못한다. 감각은 아무것도 사유하지 못한다. 오직 양자의 결합을 통해서만 지식이 태어난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는 서서 글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헤밍웨이는 글을 쓰기 전에 연필을 아주 뾰족하게 온갖 신경을 다 써서 갈았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당시에 허리를 다쳐 서서 글을 썼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서서 글을 쓴 사람은 헤밍웨이가 전부가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동화작가이자 수학자였던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이나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도 서서 글을 쓴 대표적인 인물이다.

미국이 낳은 최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알몸으로 글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그는 커다란 욕조에 들어가 아주 오랫동안 물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며 목욕을 즐겼다. 물 온도와 체온이 하나가 되고 머릿속은 저 먼 나라로의 여행으로 가득 찼다. 그는 천천히 욕조의 한 귀퉁이에 붙여놓은 소나무 판자를 당겨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영국의 시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은 한 자리에서 25잔의 차를 마셨다.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Stendhal)은 「파름의 수도원」을 쓰는 동안 아침마다 프랑스 법전 두세 페이지를 읽었다. 이제 서서히 육체의 감각이 이성과 감성에 연결되어 새롭고도 놀라운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뒤마(Alexandre Dumas)는 시는 노란색 종이에, 소설은 푸른색 종이에, 산문은 장밋빛 종이에 썼다. 가장 유명하면서도 대중적인 삶을 살았고, 화가로서 낭만주의 화풍의 선도자였고, 당대의 저명한 작가이자 정치가였던 프랑수아 샤토브리앙(François Châteaubriand)을 추앙했던, 그 또한 정치가이자 작가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는 「레미제라블」을 알몸으로 쓴 것으로 더 유명하다.

이들이 한 것이 무엇일까? 이들은 왜 25잔이나 되는 차를 마시고, 발바닥에 쏟아지는 몸무게의 고통을 참아가며 서서 글을 썼던 것일까? 헤밍웨이는 왜 “편한 자세에서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고 했을까? 알렉산드르 뒤마는 왜 서로 다른 색깔의 종이에 글을 썼을까? 또 있다. 33살에 요절한 미국의 천재 시인 하트 크레인은 왜 시끄러운 파티장을 빠져나오자마자 타이프라이터로 달려가 시를 썼을까?

 


이들은 감각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감각은 육체다. 감각은 모든 것을 육체의 기준, 즉 ‘현재의 생존’으로 판단한다. 감각은 뇌에 새로운 자극을 끊임없이 주는 것이 임무지만, 결국에는 ‘현재의 생존’과 관계없는 것으로 대부분을 판단하고 잊고 만다. 뇌는 아무런 새로운 자극도 받지 못한다. 사람 대부분은 여기서 끝이다. “별로 새로운 것이 없군!” 그러나 이들은 새로운 정보나 자극을 전하지 못하는 감각을 용서하지 않았다. “계속 보고 듣고 느껴 봐!”

헤밍웨이나 빅토르 위고는 알몸인 상태에서 촉각을 다듬었다. 새뮤얼 존슨은 미각을, 하트 크레인은 청각을, 알렉산드르 뒤마는 시각을 다듬었다. 헤밍웨이가 연필을 뾰족하게 가는 것은 연필을 가는 것이 아니라 그의 촉각을 가는 것이었다. 이제 날카로워진 연필심 끝에서 피어오르는 감각과 이성이 하나가 된 소설의 춤사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감각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된 이성이 되고 감성이 되고 놀라운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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