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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생각의 천재들>

03. 메릴린 먼로를 그린 사람

by BOOKCAST 2022.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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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상업예술가로 나의 경력을 시작하였고, 상업예술가로 경력을 마치기를 원한다. 나는 누구든지 그림으로 그린다. 나에게 질문한 사람도 그림으로 그린다. 왜 사람들은 예술가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가?”
- 앤디 워홀(Andy Warhol)

 

1926년, 노마 제인 모텐슨(Norma Jeane Mortenson)이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사진모델을 한 것을 계기로 영화에 출연했고, 「나이아가라(1953)」에서 주연을 맡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그녀의 금발 머리, 파란 눈은 전 세계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했다. 세 번의 결혼 실패와 약물중독은 결국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갔지만, 아직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녀의 예명은 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다.

메릴린 먼로가 태어난 지 2년 후 그녀를 모델로 실크스크린 그림을 제작한 팝 아트의 제왕 앤디 워홀이 태어났다. 앤디 워홀은 카네기 멜론에서 수학하고 상업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초기에는 광고나 무대 디자인을 했고 연재만화를 이용한 실험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첫 개인전에서는 캠벨 수프 깡통을 그린 작품을 비롯해 30여 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이 싸구려 깡통 그림은 순수미술계에 대한 커다란 도전이었다.

1962년, 메릴린 먼로가 죽자 약 3개월간 20여 점이 넘는 메릴린 먼로 그림을 작업했는데 실크스크린으로 제작해 색을 입혔다. 재미있는 것은 머리나 입술 등을 색이 바깥으로 번져 나오게 작업해 회화적인 느낌을 주려 했다는 점이다. 앤디 워홀은 이 작품을 통해 번지르르하게 덧입혀진 천박함에 대해 일갈하고자 했다.

 


메릴린 먼로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같은 인물을 계속 작업했는데 어쩌면 이 때문에 이들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더욱 각인되었는지도 모른다.

앤디 워홀은 이외에도 플라워 시리즈나 죽음과 재난 시리즈, 사람들을 공격하는 경찰 등도 그렸다. 이렇게 많은 작품은 모두 그 시기의 정치와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앤디 워홀이 제삼자적 관찰자로서의 미술가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작품 대부분을 작업실이 아닌 그야말로 팩토리(Factory)라고 불리는 공장에서 조수들과 대량 작업을 통해 생산해냈다. 이것은 작품에서 예술가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도 대량생산 사회에서 그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앤디 워홀의 색깔은 분명했다. 그가 그린 메릴린 먼로의 색깔만큼이나 독특했고 그 시대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앤디 워홀은 상업예술 세계를 개척하면서 그 위에 우리의 삶과 닮은 예술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본인조차도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세상의 거울’이라고 했다. 작품을 이렇게 만들어온 예술가는 없었다. 작품에 시대상을 담고, 질문을 담아내고, 대량생산하고, 자신의 손길마저도 지워버리는 예술가. 그의 목적대로 그는 성공한 상업예술가였고 가장 화려한 색깔을 내면서도 모두에게 존경받는 그를, 우리는 ‘팝아트의 제왕’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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