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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3

08. 베네치아_물 위의 도시에서 어느 날과 그 다음날. 그 둘이 완벽하게 다른 날이 되기도 한다. 가까이 존재하던 이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이전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그래서 나는, 달라진 나인 채로 여행을 떠났다. 1년 전에 숙소를 예약해 둔 곳이 두 번째 찾는 베네치아였고, 하필 찬 바람부는 가을이었고, 늦은 오후 산타 루치아 역에 도착해 어두운 호텔 방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나니 도시가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아쿠아 알타(Acqua alta)인가. 전날의 베네치아와 완전히 다른 베네치아에서, 나는 어디로 향하든 막힌 길을 돌아 오래도록 걸어야 했고, 무엇을 하든 물 위에 서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삶이 계속되었던 것처럼, 그래도 어딘가에 길이 있었다. 이러다.. 2022. 3. 14.
00.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연재 예고 유럽의 골목길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prologue 이런 책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같은 사람이 장거리 여행을 다니게 된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었으니까.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배낭여행을 다녀왔을 때, 왜 내겐 말 한마디 없었는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니가 어디 낯선 데 돌아다닐 위인이냐?” 생각해 보면, 나는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기 보다 삶 속의 변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위험과 혼란을 피해, 익숙한 나만의 공간 속에서 침잠하며 살아가는 것. 그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어느 날 문득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섰고, 타이완에서 시작해 점점 더 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프라하에서 환.. 2022. 3. 3.
10. 격변하는 시대에 생각한 사랑의 이원론 (마지막 회) 이탈리아 하늘에서 굽어보면 베네치아를 관통하는 대운하 카날 그랑데(Canal Grande)는 마치 흘러가는 물음표 같다. 그것은 구불구불 덧없이 세월 속을 흐르며 인간의 흥망성쇠와 함께했다. 그리고 죽음, 공포, 고립, 초현실적 요소가 충만한 해상도시의 복잡한 어제와 오늘을 만들어냈다. 중세 시대부터 바다는 이 도시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세속적이면서도 잔혹하고 허영심 강한 성격은 이 도시에 호방함과 낭만을 부여했다. 도시의 화려한 치장, 사치스런 술자리, 어지러운 불꽃, 장중한 축제는 모두 깊고 풍부한 추억과 감동을 남겼다. 베네치아. 아드리아 해상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은 이곳은 긴 세월에 걸쳐 창작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묘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 2020.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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