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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00.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연재 예고

by BOOKCAST 2022.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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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골목길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prologue

이런 책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 같은 사람이 장거리 여행을 다니게 된 것만도 기적 같은 일이었으니까. 대학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가 다른 친구와 배낭여행을 다녀왔을 때, 왜 내겐 말 한마디 없었는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니가 어디 낯선 데 돌아다닐 위인이냐?”

생각해 보면, 나는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기 보다 삶 속의 변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위험과 혼란을 피해, 익숙한 나만의 공간 속에서 침잠하며 살아가는 것. 그런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나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어느 날 문득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섰고, 타이완에서 시작해 점점 더 먼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프라하에서 환전상에게 사기를 당하고, 런던에선 딱딱한 바게트를 씹다 잇몸이 찢어졌으며, 비행기를 놓쳐 룩셈부르크에 낙오하고, 베네치아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어났더니 도시가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세 번째 파리를 찾았을 땐 샹젤리제 거리를 걷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순식간에 차단된 도로 한복판에서 개선문을 바라보며, 지나온 모든 순간이 꿈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유난히 마음 괴로웠던 어느 가을,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서 좋아하는 작가들의 묘비를 닦으며 보낸 오후. 날이 저물고 루브르 광장에서 거리 악사가 연주하는 클래식 기타곡 <대성당>을 듣던 순간. 가슴을 울리는 3악장 알레그로의 선율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모든 위험과 혼란과 아름다움 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기댈 유일한 진실임을.

책으로, 그림으로, 일생 벗했던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조용히 걷는 것이 여행지에서 나의 주된 일이었다. 하지만 세상 곳곳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따스한 정을 나눈 순간순간이 별처럼 가슴에 남았다. 웃음이 많아졌고, 미움이 부질없어졌다. 나에게 일어난 작은 기적이 모두에게 어떤 모습으로든 찾아왔으면 좋겠다.

긴 세월, 더없이 좋은 스승이자 친구가 되어주신 이충직 교수님께 깊은 우정과 존경을 전하며.
사랑하는 어머니와 오빠에게, 온 마음을 담아.

고 희 은

 


 

저자 l 고희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 예술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영화와 공연, 지역 문화콘텐츠 기획 작업을 한다.
어느 해 생일에 여행을 시작해 10년 넘게 틈틈이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피로와 불면에 괴로워하면서도 오래된 도시의 이야기를 따라 종일 걷는 것을 여행의 낙으로 여긴다.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과 스포츠 경기를 좋아한다. 딥 퍼플, 메탈리카의 사인 LP와 이종범, 이대진 선수의 사인 볼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뮤지컬 배우 20인에게 묻다』(공저), 『이런 나여도 괜찮아』가 있다.

 


 

[연재 목차]

01. 바르셀로나_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02. 마드리드_나를 피곤하게 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산다는 것
03. 그라나다_안달루시아의 태양을 닮은 남자
04. 리스본_늙은 친구 같은 도시에서
05. 신트라_비밀의 숲의 은둔자
06. 로마_달콤한 삶은 어디에 있는가?
07. 피렌체_어느 실업자의 죽음
08. 베네치아_물 위의 도시에서
09. 오베르 쉬르 우아즈_까마귀 나는 언덕
10. 파리_상젤리제 거리에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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