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을 잃는 것이 곧 죽음인 사람들이 있다. 거대한 우주 속, 지구 표면의 한 점 먼지 같은 자신의 존재를 오직 사랑의 이름으로 확인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사랑의 끝이 곧 죽음인 것은, 삶을 걸기 때문이다. 죽도록 사랑하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출신의 작가 마리아노 호세 데 라라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라라의 삶에 관심이 생겨 단편적인 글들과 책까지 찾아 읽게 되었었다. 또 사랑인가. 그 끝은 역시 죽음.
필명 ‘피가로’. 19세기 초의 시인이자 평론가. 스페인 로맨티시즘을 대표하는 인물. 여기까지가 라라의 이력에 대해 알려진 바인데, 『열정』(로사 몬떼로 著)이란 책에 따르면 그는 대단히 총명했고(18세에 풍자비평집을 냈다), 권력과 관습에 대항하는 자유주의적 사상가이면서 때로 대단히 급진적이고, 때로 대단히 무정부주의적이고, 엉망진창의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에 대해 동료 문인들은 ‘분노에 찬 개인주의자’라는 표현을 썼다. 절대왕정의 억압과 언론 검열로 스페인을 떠났다가 되돌아와 발표한 글 「돌아온 피가로」의 첫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나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 게 있다면, 그것은 산다는 것이다.
둘 다 결혼한 상태에서 만난 세비야 출신의 여인 돌로레스에 대한 열정. 7년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집에서 가진 마지막 만남. 그리고 그의 사랑을 거절하고 방을 나서던 그녀의 등 뒤에서 라라는 자신의 머리를 총으로 날려버렸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덟. 돌로레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의 등뒤에서 삶을 끝내버린, 그 가혹한 복수를 견디며 그래도 시간은 가고 사람은 살아가게 되었겠지.
오직 삶으로 피곤해지지 않는, 분노에 찬 개인주의자. 라라에게 마드리드는 어긋난 사랑의 공간이자 정치적인 절망과 체념의 공간이었다. “마드리드에서 펜을 든다는 것은 눈물을 흘리는 일이며, 폭력과 소요의 악몽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목소리를 찾아 나서는 일”이라고 했던 라라. 그의 자유로운 사상과 풍자 정신은, 역시 어떤 시대에 너무 일찍 도착한 탓으로 비극이 되어버렸다. 상상력과 낭만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반과 고유의 풍속에까지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이 젊은 시인이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꽤나 불편한 존재였던 모양이다. 자유주의자들에게조차 외면당하며 반동으로 몰리다 결국 사랑 때문에 파국을 맞은 가련한 남자의 이야기.
어려서부터 조숙하고 우울했던 라라. 솔 광장에서 마드리드 왕궁으로 이어지는 구시가 산책을 즐겼다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천천히 걸었다. 산 미구엘 시장에 잠시 들렀다 마요르 광장으로. 10대의 소년 라라는 이곳에서 혁명과 자유주의의 상징이었던 인물들이 공개 참수형 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보다 더 오래전에는 종교재판과 처형이 이루어졌던 피의 광장. 이토록 평화로워 보이는 광장 한가운데서 참수형과 교수형이 무시로 행해졌을 과거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이나 부다페스트의 영웅 광장에서도 같은 상상을 하곤 했었지. 죽음이 있던 자리. 잊는 것 또한 산 자들의 몫일 터인데, 어찌하여 나는 이런 곳에 설 때 가장 실재함을 느끼는가.
'시·에세이 >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05. 신트라_비밀의 숲의 은둔자 (2) | 2022.03.10 |
---|---|
04. 리스본_늙은 친구 같은 도시에서 (2) | 2022.03.08 |
03. 그라나다_안달루시아의 태양을 닮은 남자 (1) | 2022.03.07 |
01. 바르셀로나_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3) | 2022.03.04 |
00. <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연재 예고 (5) | 2022.03.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