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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01. 바르셀로나_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by BOOKCAST 202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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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다.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확실하다. 한순간 몰래 훔쳐보고 만 불가침의 영역. 위협적일 만큼 너무도 분명하지만, 어쩌면 무서운 속도로 해체되어버린 간밤의 짧은 꿈같은, 모순에 찬 놀라움. 나는 그 어떤 언어로도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church, 성가족성당)를 마주한 순간의 경이로움을 설명할 수 없다.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ília)
 

전철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온 뒤, 무심코 바라본 그곳에 가우디(Antoni Gaudí)의 성당이 서 있었다. 괴물 같은 입을 벌리고, 아니 내 어린 시절 상상했던 기묘하고도 장엄한 세계의 문을 열고. 얼어붙은 발걸음.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있는가? 이 모든 세상의 희비극 속에서도 인간의 꿈과 집념은 끝내 신에 가닿을 수 있는가? 그렇다고 말하겠다. 보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존재하고, 가우디가 만들어낸 집에 사람이 살고 있다.
 
성당 안의 의자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바닥에 누워버리고 싶은 마음을 누른 것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비치는 형형색색의 햇살, 수직으로 쏟아지는 기둥들 사이에서 바다인 듯 숲 속인 듯 부유하는 사람들의 몸과 영혼이 보였다. 이토록 순수하게 세상을 이루고 있는 선()들이라면, 그 선을 따라 흐르고 솟아오르다 그만 거품처럼 터져버려도 좋을 것만 같던, 파밀리아 성당에서의 꿈결 같은 한나절.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
 

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간의 기억과 상상이 가진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반짝이는 예지와 명랑한 감각 위에,
신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더하면
가우디의 건축이 될 것이다.


가우디의 건축을 직접 마주하기 전, 구도자와도 같은 얼굴과 그 얼굴에 꼭 어울리는 삶으로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가난한 구리세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75세에 죽기까지, 실연의 경험 한 번 이외에 오직 전 생애를 건축에 바친 사람. 그렇게 고독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아간 예술가의 모습이 그리울 때가 있었다.
 
자유와 욕망, 세상 모든 충동과 광기의 표상으로서 예술을 사랑하지만, 그 소란스러운 열정 반대편에서 예술을 이야기하며 고요히 차 한잔 하고 싶을 때, 성스러우면서도 미성숙한 소년의 눈빛을 간직하고 있는 흰 수염의 예술가를 떠올리곤 했다. 내겐 가우디가 그랬고, 조각가 브랑쿠시가 그랬다. 지척 거리에 살면서도 가우디와 피카소가 서로를 싫어했던 건, 피카소의 사생활에 비추어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40여 년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 매달리다 전차에 치여 사망한 가우디. 초라한 행색 때문에 부랑자로 오인되어 제때 치료도 받지 못한 그의 마지막 말은 “나의 하나님…”이었지만, 그 뒤에 홀로 베를렌의 시구를 되뇌진 않았을까.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아시지요, 이 모든 것을.’
 
조지 오웰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건물 중의 하나”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또한 현대 건축가들에게 가우디는 음악에서의 모차르트처럼 그저 지나간 고전일 뿐이라는 어느 작가의 글을 본 적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도 그의 작품이 존재했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두 번째 찾은 스페인, 두 번째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마주했을 때도 감흥은 조금도 퇴색하지 않았다. 성당 근처의 건물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거나 빨래를 널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성당 뒷문에선 학생들이 모여 앉아 평화롭게 카탈루냐 독립시위를 하고 있었고, 길 건너 공원에선 아랍계 노점상들이 서로 자리다툼을 하다 경찰에 쫓겨 썰물처럼 사라졌다.
 
물결치는 벽과 베란다. 그라시아 거리의 벤치에 앉아, 마치 해저 도시를 여행하듯 카사 밀라(Casa Milà)를 바라보았다. 영화 <스타워즈>의 한 장면 같은 카사 밀라의 옥상. 팀 버튼의 영화 속에서 옮겨온 것 같았던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카사 밀라(Casa Milà)
 

그 완벽한 곡선과 해학고딕과 로마네스크바로크에서 아르누보심지어 스페인 무어 양식까지를 아우르는 가우디의 작품들 앞에서다시 한 번 생각했다한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인간의 기억과 상상이 가진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반짝이는 예지와 명랑한 감각 위에신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더하면 정확히 가우디의 건축이 될 것이다바르셀로나고독한 영혼이자 위대한 예술가의 도시그리고 그 예술가를 지킨 위대한 자본가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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