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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고독한 사람들의 도시>

05. 신트라_비밀의 숲의 은둔자

by BOOKCAST 2022.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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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카 곶(Cabo da Roca)
 

거친 바다 앞에 선다는 것은, 지나간 모든 고통과 은총 앞에 숙연해진다는 것. 해와 달의 사연이 바다의 깊이를 바꾸고, 가까웠다가 멀어지는 타원의 궤도 위에서 바람이 불고 청춘이 졌다. 언제쯤이었나. 휘몰아치는 파도 앞에 서서 저 바다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던 때. 여기가 정말 세상의 끝이 아니라면, 이렇게 해져버린 돛을 매달고 저 거친 바다를 아직 더 표류해야 한다는 것인지. 얼마나 부지런히 따라잡아야 늘 달아나버리는 경계에 닿을 수가 있나.

‘땅의 끝’, ‘세상의 끝’이라 불리던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카보 다 호카(Cabo da Roca). 카보는 곶이고, 호카는 ‘미친 사람’이란 뜻이니 우리말로 ‘미친 사람의 곶’이다. 그렇겠지. 세상의 끝에 서 있는 자, 곧 미친 사람이었을 테니. TV에서 포르투갈에 대한 여행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그래, 저기, 세상의 끝에 서 있어 보고 싶구나, 막연히 생각했다. 거친 대서양의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한 번 무심히 나를 바라보고 싶었다.

리스본 호시우 역을 떠난 열차가 신트라에 도착했다. 작고 고즈넉한 역사. 밖으로 나오자 옹기종기 모인 전 세계 여행자들이 각자의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페나 궁전으로, 어떤 이들은 무어인의 성으로, 그리고 나는 403번 버스를 타고 호카 곶으로 향한다. 신트라 산맥의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위태롭게 이어진 꼬불꼬불한 비탈길을 노 젓듯 미끄러져 가던 운전기사는 종종 다른 일을 하면서도 길의 곡선 그대로를 기억했다. 이윽고 도착한 바다. 저 멀리 커다란 십자가 탑이 보이고, 길게 이어진 절벽 아래 아득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인 이곳. 깎아지른 듯 위태롭게 솟은 절벽 위에 서서, 지리적 이유 외에도 왜 옛사람들이 이곳을 세상의 끝이라 여겼는지를 알 것 같았다. 안개에 쌓인 신비로운 대기, 흐린 수평선 너머 무언가가 더 있다고 생각하기엔 바다가 너무 검푸르고 바람은 너무 사납다. 로마 시대부터 1,500년 세월을 그렇게 믿었던 사람들. 그들 중 누군가는 때로 저 막막한 세상의 경계 위로 마지막 고통의 한 발을 내딛기도 했으리라.

바람이 차고 물이 깊을수록 뜨거운 것들을 건져내는 인간의 슬픈 습관. 그러나 어느 순간, 그토록 뜨거웠던 것들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되는 순간이 있다. 어떤 연민도 후회도 없이, 어떤 과장도 눈물도 없이, 자신의 삶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 인생과 나의 시선이 부딪친 그때, 가벼운 목례라도 나누며 어느덧 편안해진 얼굴로 돌아설 수 있다면.

몸을 가누기 힘든 바람. 이 극한의 언덕 위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건 오로지 풀과 나지막한 관목, 그리고 야생화뿐. 주어진 상황이 혹독할수록 존재들은 낮고 강해진다. 날리는 옷깃을 부여잡고 여행객들이 줄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 곳으로 갔다. 호카 곶의 상징이자 포르투갈의 상징인 십자가 탑이다.

여기에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탑 가운데 16세기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까몽이스의 대서사시 「우스 루지 아다스」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바스쿠 다가마의 석관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까몽이스의 석관을 보았을 때, 그만큼 국가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난하게 살다간 시인. 유럽의 변방이 되어버린 지금의 포르투갈 사람들에게는, 찬란했던 조국의 역사와 신화를 노래한 까몽이스의 「우스 루지아다스」가 위안이자 그리움일지도 모르겠다.

관광안내소를 찾아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호카 곶에 왔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고야 말았다(11유로를 내고). 여행 소식을 궁금해 하는 친구에게 보여주며 유치한 자랑이라도 해야 하나.

“오늘은 세상의 끝에 서 있었어. 거긴 말이지, 파도와 바람이 인간을 압도하고, 공기는 투명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고 있어. 잊지 마, 그 아찔한 절벽 위에서 내가 중심을 잡고 있었다는 걸.”

유럽과 아랍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대항해시대의 속사정은 잠시 미뤄두고, 거친 바다 앞에 서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끝이라 하는 곳에서 두려움을 딛고 망망대해로 나선 사람들. 그들로 인해 세상은 넓어지고 발전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 서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소중한 이와 함께할 작은 땅 위에서 조용히 욕심 없이 살고자 한 사람들. 뒤에 남겨질 이들의 눈물과 이미 앞에 있었던 이들의 아픔이 요구되는 일이라면 그 무엇도 욕심내지 않는, 그저 그렇게 흔들리며 고요하게 한세상 살다 가고 싶었던 사람들.

그런 작은 평안조차 작은 의지로는 얻어내기 힘들다는 걸 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았더라면, 그 많은 이들이 바다에 묻히지도 않았을 테고 아프리카의 주인들 역시 자신의 영토에서 계속 자유로웠을지 모른다. 이 차가운 바람 속에 서서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는 회색인. 게으르고 심약하다 해도 좋다. 그러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호카 곶을 떠나 동화 속 궁전처럼 알록달록 예쁜 페나 궁전과 7~8세기 무어인들이 해발 450미터의 산 위에 지어 놓은 무어인의 성터를 둘러본 뒤, 서둘러 헤갈레이라 별장(Quinta da Regaleira)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진을 통해 보았던 그 스산하고 신비로운 분위기에 사로잡혀 꼭 한 번 찾고 싶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헤갈레이라 별장은 오래전 헤갈레이라 자작부인의 소유였던 별장을 20세기 초에 대대적으로 개축한 곳이다. 브라질 출신의 사업가 카르발류 몬테이로가 이탈리아의 무대 건축가 루이 마니니에게 의뢰해 4헥타르에 이르는 독특한 정원과 궁을 완성했다. 커피와 보석 판매로 성공한 몬테이로는 당시 포르투갈에서 ‘백만장자 몬테이로(Monteiro the Millionaire)’로 통했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부를 소유하고 있었는지 짐작할 만하다.

언덕길에 자리한 입구를 통과해 매혹적인 풍경 속으로 들어섰다. 우거진 고목과 넝쿨, 미로처럼 연결된 길이 있었고, 신비로운 지하 동굴과 폭포,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과 작은 탑 아래에 상상하지 못한 공간들이 숨어 있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비밀스러운 숲과 정원은 본 적이 없다. 어디에선가 시계 토끼나 푸른색의 유령신부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또 어느 동굴에선 인디애나 존스의 모험이 펼쳐지고 있을 것만 같은 공간. 그러면서도 로코코와 네오 고딕, 네오 마누엘 양식 등이 버무려진 건물과 장식들은 고풍스러운 유럽의 유산 그대로였다.

헤갈레이라 별장(Quinta da Regaleira)
 

여기저기를 걷다 별장에서 제일 잘 알려진 나선형의 우물 입구에 다다랐다.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을 인솔하고 온 젊은 가이드가 막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헬게이트입니다!”

그는 이 우물이 죽음으로 가는 길을 상징한다고 말했고, 바닥까지 내려간 뒤 거기에서 이어진 긴 동굴을 지나면 환생의 연못과 폭포에 이르게 된다고도 했다. 옛날 사람들은 9층 높이의 나선형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것을 곧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라 여겼다는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는 사이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닫힌 벽이 아니라 계단으로 이루어진 우물. 성벽처럼 이어진 나선형의 돌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우물의 바닥에 닿게 된다. 내려갈수록 빛은 희미해지고, 사람들은 텅 빈 어둠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머리 위의 작은 하늘. 한줌 빛의 무게로 영혼의 마디마디가 내려앉을 것만 같은. 죽음이 이런 것이었나. 저토록 가깝게 보이는 빛을 등지고 이제 캄캄한 동굴로 들어서야만 한다. 그 끝에 있는 환생의 연못을 향해 걸으며, 해묵은 공기와 어둠 속에 더듬거리며, 아득하고 두려워도 또다시 사랑이 기억났다. 이렇게 이번 생에 좀 더 머무를 수 있다면, 피안의 약속 같은 건 없어도 좋을 텐데.

적막한 정원 아래 동굴을 지나서 다시 우물의 바닥에 서 있어 보아야겠다. 나선형의 죽음을 거슬러 올라가면 몇 세기 전의 기억이 떠오를 것만 같은 오후.
 


녹조 가득한 초록빛 연못과 작은 폭포 너머로 다시 태어난 이들의 재잘거림이 가득하고, 나는 돌다리와 구름다리와 숲길을 지나 몬테이로의 대저택에 이르렀다. 잿빛 하늘 아래 신비로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네오 고딕 양식의 건물. 정교한 장식의 첨탑들, 로코코와 네오 마누엘 양식으로 치장된 내부. 이렇게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왕국을 거닐며 살았을 그 옛날 백만장자의 모습을 그려본다. 행복했을까, 그는. 노년에 이 별장을 완성한 후 겨우 10여 년을 살다 떠난 그의 삶이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밖으로 나와 아무도 없는 정원의 돌 벤치에 앉았다. 맞은편엔 색색의 자갈들로 섬세하게 모자이크된 성벽. 문득 베르베르의 단편 「완전한 은둔자」가 떠오른 것은 그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감각에 기대지 않는 ‘진짜 세계’를 탐구하며 완전한 고독을 택한 주인공. 그러나 그런 진정한 깨달음은 겨우 아이들의 장난이나 한 마리 개로 인해 파괴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명상을 끝내면서 그가 발견한 것은 하나의 심연뿐이었다. 그 심연을 보고 그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자 문득 죽음이야말로 진정으로 흥미진진한 마지막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베르베르, 「완전한 은둔자」에서, 『나무』


어쩌면 이 별장의 주인 또한 은둔자로서 10여 년을 보내고 죽음이라는 마지막 모험을 떠난 것은 아닐까. 물론 베르베르 소설의 주인공과 달리 몬테이로의 뇌는 그의 몸 안에 있었고(아마도), 또 그에게는 사유에 앞선 몸과 경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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