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 같은 그 시골 마을에서, 저녁이면 푸줏간 주인이나 벽돌공들과 어울려 카드놀이를 하고 사소한 다툼을 하며 불한당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던 그의 편지는 몹시 마음 아픈 구석이 있다. 그렇게라도 또 다른 일상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밤이면 몸을 정제하고 관복으로 갈아입은 후 서재에서 글을 써 내려간 마키아벨리. 그렇게 보내는 네 시간 동안 “모든 고뇌를 잊고, 가난도 두렵지 않게 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는다”던 그는 위대한 정치 철학자이자 위태로운 조국 이탈리아를 걱정한 사상가였음이 틀림없지만, 어쩌면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기를 가장 열망했을지도 모르겠다.
철저히 현실적이고 계산된 정치론으로 인해 권력자들을 위한 조언자, 권모술수를 가르치는 악의 화신으로 평가받았던 마키아벨리. 『군주론』은 이탈리아의 정치적 통일을 염원하며 집필한 책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 역시 메디치의 눈에 들어 피렌체의 직장으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의지가 일정 부분 반영된 것이었다. 결국, 또, 실업자인 그의 처지가 문제였던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권력의 속성을 파헤치는 그의 대범한 통찰이 오히려 약자들을 일깨워 강자의 횡포에 맞설 수 있게 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가난하고 외로웠던 사람. 죽어서도 긴 시간 오해받았던 사람.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이란 형용사는 아직도 ‘권모술수를 부리는’, ‘교활한’ 등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오래전에 예매하고서도 바우처를 입장권으로 바꾸는 데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 곳. 유럽의 미술관 중에서 제일 들어가기 힘들었던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한 곳.
이곳에 와서야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영화 <전화의 저편(Paisà)>에 그려진, 약탈당한 우피치 미술관의 텅 빈 벽이 얼마나 슬픈 장면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나치에 점령당한 피렌체에서 텅 비어버린 우피치 미술관을 바라보는 일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어쩌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었으리라.
끝도 없이 이어진 종교화와 초상화들 속에서 한눈에 들어온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림,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옥상 테라스로 올라갔다. 푸르른 하늘 한가운데 거대하게 솟아 있는 베키오 궁전의 모습. 현재는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는, 마키아벨리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했던 직장.
베키오 궁전 2층 난간에 서서 1층의 대강당 홀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 매일 이곳으로 출근했을 마키아벨리. 어느 날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어느 날은 지각 벌금이 두려워 종종걸음으로 남쪽 출입문에 들어섰을 그의 모습. 천장화와 벽화로 가득한 옛 집무실들. 창밖으로 시뇨리아 광장과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 보이는 집무실에 앉아, 서기관이자 대통령 비서관 역할까지 맡아 밤낮으로 성실히 일했을 마키아벨리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저 이 작은 집무실과 책상이면 충분했을 텐데. 그랬더라면 『군주론』은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고통 속에서의 영혼의 승리보다 그 자신에게 더 소중한 것이 있었다면 말이다.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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