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작고 다정한 오베르의 오후. 고흐의 그림 속 배경이 되었던 오베르 성당은 공사 중이고, 시청사는 1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림과 똑같은 모습으로 라부 여관 앞에 서 있다. 관광안내소 옆에선 주말장터가 한창이고, 소박한 집들의 마당엔 들꽃 향기 가득하고, 마주치는 주민들은 수줍고도 상냥하다. 파리에선 이렇게 조용히 얘기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이슬비 왔다 간 잿빛 거리. 추위에 오스스 떨며 바람 속을 걸어 오른 언덕. 묘지 앞에 한참을 앉아 있다 고흐의 마지막 그림으로 알려진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배경 앞에 섰다. 황금빛 밀밭 대신 잡초뿐인 들판이 펼쳐져 있고, 맞은편의 옥수수밭은 수확도 하지 않은 채 까마귀들이 쪼아 먹은 흔적만 남아 있다. 그 속에 외롭게 서 있는 고흐의 그림 안내판. 풍경은 변했어도 세 갈래로 뻗은 길과 어두운 하늘, 간간이 날아가는 까마귀 떼는 그림 속 모습 그대로였다.
옥수수밭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고흐가 바라보았을 바로 그 풍경을 보고 있다. 프레임의 왼편에서 밀려드는 한 무리의 여행객들. 오베르에서 마주친 단체 여행객은 모두 한국인들이었다. 역 앞 안내소에 한국어 안내 팸플릿이 비치되어 있고, 직원이 우리말로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자연스레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하게 되었다.
“고흐가 마지막에 그린 이 그림을 우울함과 절망, 고뇌의 표현으로 해석하는 의견들이 많은데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힘차게 날아가는 까마귀 떼, 무엇보다 고흐는 노란색을 정열과 희망의 색채로 자주 사용했습니다. 저는 고흐의 그림 속 노란 밀밭이 삶에 대한 여전한 희망과 의지를 상징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략 이런 말이었다. 나름의 생각으로 작품을 해설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고 할까. 그들이 그림 안내판 옆에서 사진을 찍고 사라진 뒤, 또 다른 한국 단체 여행객들이 언덕을 올라왔다. 그리고 시작된 가이드의 설명.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아까와 같은 이야기였다.
바람이 불고 한기가 몸속을 파고든다. 위대하고도 불행했던 한 영혼을 한 세기 넘게 기억하고 있는 눈물의 언덕. 그새 더 짙어진 하늘이 표지판 속 그림을 닮아간다.
“이 안정적이고 지루한 세상에 홀연히 나타나 가혹하게 혹은 축제처럼 자신을 불살라버린 신화적인 인물.” 조르주 바타이유가 바라본 고흐는 그런 존재였다. 갑자기 까마귀 떼까지 날아올라 풍경을 완성한다. 저 까마귀. 앙토냉 아르토는 “어두운 하늘 아래 위협적으로 소용돌이치는 우울함의 상징”으로 고흐의 까마귀를 해석했었다. 그리고 지금, 버려진 옥수수밭을 등지고 앉아 있는 나는 그림 속 까마귀 떼에서 고흐의 영혼 그대로를 느낀다. 지상의 양식과 천상의 자유 사이를 방황하는 한 마리 까마귀. 밀 이삭만으로 허기를 달래지 못한 그 영혼이 보다 빨리 다다르기 위해 고흐의 하늘은 그토록 낮고 깊었던 모양이다.
예술의 아름다움 앞에서 울어본 경험, 그 속에 깃든 고통을 느끼며 울어본 경험,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의 불행에 울어본 경험.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그 경험들을 한꺼번에 하게 해준, 빈센트 반 고흐. 위대함은 모든 것을 초월한 경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 속절없고 나약한 인간의 한계 속에서 끝내 자유와 진리를 갈망하는 의지.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밀 이삭 한 개, 까마귀의 날갯짓 한 번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심연을 헤매는. 진정 위대하고 감동적인 것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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