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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베스트셀러5

10. 자신만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떠나 버린 아버지에게 등을 보이는 것..(마지막 회)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다케이 미도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입을 여는 순간 통곡이 터져 나올 게 뻔했고 그 이전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유일하게 떠오르는 건 사과의 말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일으킨 일 때문에 남편에게까지 이런 고통과 불명예를 맛보게 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이 뜨겁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사과해 버리면 아버지가 너무 가여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면─. 다시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쉰두 살 나이인 지금까지도 부모님을 늘 아빠 엄마라고 부르는 미도리는 생각한다. 왜냐면, 그래서는 마치 아빠가 나쁜 짓을 저지른 것 같잖아─. 아니면 나쁜 짓을 저지른 게 맞는 걸까?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 판단도 서지 않는다. 줄곧 입을 막고 있던 손수건을 한순간이라도 입에.. 2022. 10. 1.
01. 아무도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바 라운지에는 피아노가 있고 촉촉한 곡이 연주되고 있다. 부스석에 자리를 잡고 앉은 세 사람은 각자 마실 거리를 주문했다. 여위고 키가 크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시노다 간지는 여든여섯 살, 대머리에 몸집이 작은 시게모리 츠토무가 여든 살이고, 축 늘어진 뺨이 불도그를 연상시키는 데다 숏 보브 스타일의 백발이 남의 이목을 끄는 미야시타 치사코는 여든두 살이었다.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두 달 만으로, 그전에도 그다지 띄엄띄엄 만나지는 않았기에 예전과 같다고 세 사람 다 느끼고 있었다. 어쩐지 간단히 옛날로 돌아와 버린 것 같다고. 실제로는 아무도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절엔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 못했는데.” 치사코가 그렇게 말하고 건배하듯 맥주잔을 살짝 들어 보인다.. 2022. 9. 21.
00.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연재 예고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수많은 작품으로 국내 480만 독자에게 사랑받은 에쿠니 가오리의 신간 장편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도쿄 타워』 등 수많은 작품으로 국내 480만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저자 에쿠니 가오리가 신간 장편 소설로 찾아왔다. 전작들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신간으로 돌아온 에쿠니 가오리는, 유려한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잔잔한 매력을 선사한다. 『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발생하는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치밀하게 엮어 전개한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를 통해 여러 인물들의 삶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특히 이번 신간은 팬데믹 시대를 반영함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 2022. 9. 20.
04. 다스 게마이네_“그래도 그 녀석의 그림만은 정정당당히 인정해줘야 해.” 2. 해적 사타케는 작은 소리로 말하고 손목에 찬 금시계를 꽤 오래 바라보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눈치였지만, “히비야에 신교향곡을 들으러 가려고. 고노에도 요새 상술이 좋아졌단 말이야. 내 옆자리엔 늘 외국인 아가씨가 앉는다니까. 요즘은 그게 낙이야.” 하고 말을 끝내자마자, 쥐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쫑쫑 달려갔다. “쳇! 기쿠야, 맥주 좀 줘. 너의 미남이 가버렸어. 사노 지로, 마시자. 내가 시시한 놈을 끌어들였네. 말미잘 같은 놈. 저런 놈이랑 싸우면 별짓 다 해도 못 이겨. 손 놓고 가만있어도 내가 날린 주먹에 그냥 척 달라붙어 버린다고.” 바바는 갑자기 진지하게 목소리를 낮추고 “그 녀석, 기쿠 손을 막 움켜잡더라니까. 저런 놈이 남의 부인을 쉽게 가로채는 거야. 내심 고자가 아닐까 싶은데.. 2022. 6. 9.
01. 다스 게마이네_당시, 내게는 하루하루가 만년(晩年)이었다. 1. 환등(幻燈) 당시, 내게는 하루하루가 만년(晩年)이었다. 사랑을 했다.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전에는 내 왼쪽 옆모습만을 보이며 나의 남자다움을 내세우고자 조바심을 냈고, 상대가 단 일 분이라도 망설이면 나는 금세 어쩔 줄 몰라 하며 거센 바람처럼 달아났다. 하지만 당시 매사에 야무지지 못했던 나는, 내 몸에 달라붙어 있다고 여긴, 상처를 최소화하는 그 현명한 자기방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이른바 절도 없는 사랑을 했다.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목쉰 중얼거림이 내 사상의 전부였다. 스물다섯. 나는 지금 태어났다. 살아 있다. 끝까지, 살아가리라. 진심이다.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듯하다. 정사(情死)라는 낡은 개념을 몸으로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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