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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7

04. 인생에서 처음 만나는 고난 요사이 부고를 받다 보면 100세까지 장수하신 분들의 부고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3.5세이다. 기대수명이란 출생한 신생아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나이를 말한다. 일본인의 기대수명이 84.4세로 세계에서 가장 최장수 국가이다. 《동의보감》을 집필한 허준의 시대에 조선 사람 평균수명이 30대였다. 조선의 왕들의 평균수명은 46세였다. 21대 영조가 가장 장수하여 82세까지 생존하였다. 과거 조선시대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전염병이라고 추측된다. 1895년 당시 조선의 수도 한성의 인구가 22만 명이었는데 호열자라고 부르는 콜레라가 유행하여 한성에서만 5천 명이 사망하였다. 당시에는 세균에 대한 존재도 모르던 시기였기에, 콜레라는 쥐 귀신에 의하.. 2022. 11. 8.
06. 탐정이 된 성녀 (마지막 회) 스쿠타리 병원의 상황은 재난과 같았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나중에 이렇게 썼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 스쿠타리 병원은 웅장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한눈에 그 병원이 실로 백색 무덤, 질병의 온상임을 알 수 있었다.” 왜 그토록 많은 병사가 죽어가고 있었을까?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나쁜 위생이 명백한 원인이다. 세균은 지저분하고 해충이 들끓는 환경에서 전파된다는 사실을 현대인은 잘 안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이 활약하던 19세기 중반에는 질병이 병원균으로 전파되며 소독제와 청소로 대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막 밝혀지던 참이었다. 따라서 병원균과 그 전파에 대한 의학적 지식을 신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의사가 부지기수였다. 나이팅게일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그녀는 식량과 보급품이 부족해서 사망자가 많다고.. 2022. 11. 2.
05.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흰색 간호복 너머 숨겨진 질병 역학의 개척자 코흐는 자신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받았지만, 나이팅게일은 역학자라기보다 크림전쟁 당시 “등불을 든 여인”으로 대중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이 병원에서 간호사로 환자들을 돌본 시간은 매우 짧았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서보다 질병 전파에 관해 연구하고, 토론하고, 분석하고, 보고서를 쓰는 데 자신의 경력대부분을 할애했다. 나이팅게일의 이런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과학지식의 발전이 일반적으로 유럽 백인 남성들에 의해 이뤄진다는 통념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과학지식 발전이 스쿠타리의 야전병원에서 일하거나 인도 주재 영국군과 인도 전역에 대해 침실에서 분석한 여성에 의해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식생산에 관한 대중의 고정관념은 나이팅게일의 연구 활동을 가리고, 그를 역학자가 .. 2022. 7. 17.
04. 식민지의 세탁부, 전염병 연구에 핵심 역할을 했으나 역사에서 누락되었다. 식민지의 세탁부, 무슬림 순례자, 노예, 빈민…, 전염병 연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역사에서 누락된 사람들 우리는 1830년대에 전염병이 창궐했던 알렉산드리아 같은 도시들로부터 지중해 몰타 섬으로 여행을 와 격리된 사람들의 더러운 리넨(옷, 침대시트, 수건 등)을 빨았던 세탁부가 누구였는지 모른다. 다만 그 세탁부가 당시 영국이 지배하던 몰타의 수도 발레타에 살았다는 것은 안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공원 근처에서 살았을 것이다. 지중해 해상교통의 요충지인 몰타에 정박하는 배를 탔던 승객들은 유럽으로 건너가기 전에 몰타에서 격리돼 검역을 거쳐야 했다. 흑사병에 걸린 적이 있거나 걸렸을 것이라고 의심되는 승객들은 “불완전건강증명서(foul bill of health)”를 받고 오랫동안 격리 수용됐다. 선.. 2022. 7. 15.
00. <제국주의와 전염병> 연재 예고 제국주의, 노예제, 전쟁은 의학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현재 우리의 건강은 이름 없는 조상들의 피와 고통에 너무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의학은 18~19세기에 광폭으로 발전했다. 번성하는 제국주의의 관료체계 덕에 전 세계로 파견된 의사들은 시시각각 닥치는 의학적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로 변모했다. 넘치는 열정으로 유행병을 관찰하고, 감염자와 사망자 수를 세고, 주변 환경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던 그들은 동료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혁신적인 이론과 치료법을 개발해냈다. 사례연구와 통계분석에 근거해 질병의 양상을 규명하는 역학疫學 역시 이 시기에 탄생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공중보건의 시대가 첫발을 뗀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 시기 의사들이 대규모 임상을 진행하고, 예후를 관.. 2022. 7. 8.
08. 반복되고 상존하는 자연의 두려움 (마지막 회) 인류 역사상 바이러스에 의한 공포는 언제나 공존했다. 1350년 무렵 페스트, 즉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목숨을 잃을 정도로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은 천연두였다. 최소 3억 명이 사망했으며 18세기 제너의 종두법 발견 이전까지 전 세계 사람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100여 년 전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은 건 스페인 독감이었다. 당시 1차 세계대전이 스페인 독감의 대유행을 부추겨 2천5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2003년의 사스는 중국 남부에서 발생한 전염병으로 중화권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퍼져나가면서 770여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10여 년 전에는 신종플루로 인해 일본 내에서만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서는 등 전 세계 28만여 명의 목숨을 앗.. 2022. 5. 10.
<바이러스전쟁> 세계 역사와 지도를 바꾼 장티푸스, 말라리아, 페스트, 콜레라, 스페인독감,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읽는 전염병의 역사 2022.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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