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노예제, 전쟁은 의학을 어떻게 바꾸었을까?
“현재 우리의 건강은 이름 없는 조상들의 피와 고통에 너무나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의학은 18~19세기에 광폭으로 발전했다. 번성하는 제국주의의 관료체계 덕에 전 세계로 파견된 의사들은 시시각각 닥치는 의학적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로 변모했다. 넘치는 열정으로 유행병을 관찰하고, 감염자와 사망자 수를 세고, 주변 환경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던 그들은 동료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혁신적인 이론과 치료법을 개발해냈다. 사례연구와 통계분석에 근거해 질병의 양상을 규명하는 역학疫學 역시 이 시기에 탄생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공중보건의 시대가 첫발을 뗀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 시기 의사들이 대규모 임상을 진행하고, 예후를 관찰한 대상은 누구였을까? 당대 의학 혁명을 이끈 학자나 이론이 의학사의 중요 페이지를 차지하는 것과 달리, 사례연구 현장에 관한 이야기는 말끔히 사라졌다. 이 책 《제국주의와 전염병(원제: Maladies of Empire》은 바로 그 현장, 의학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기록이나 기억에서 삭제되어 버린 이들의 목소리를 어렵사리 발굴해낸 역작이다.
당대 기준과 권력의 그늘에서 억압받고 잊힌 이들의 흔적을 찾아내 기존 역사 기록의 빈자리를 채워 넣고 있는 짐 다운스는 이 책에서 18~19세기 제국주의 시대 흑인과 혼혈인, 노예와 식민지 피지배인, 죄수와 군인들이 전염병 연구 및 역할 발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현미경을 들이대듯 상세하게 이야기한다. 예속된 사람들의 강요된 희생과 가슴 아픈 삶이 근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찬찬히 파고드는 이 책은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현실의 속살, 잘 포장된 외피 아래 우리 삶이 놓인 진짜 자리를 새로운 눈길로 들여다보게 한다.
저자 l 짐 다운스
JIM DOWNS
미국의 역사학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역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현재 게티스버그 칼리지 역사학 교수로, 미국의 노예제 및 남북전쟁사를 강의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역사의 뒷면, 권력의 그림자에 가려 잊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발굴하고 재해석해 들려주는 그의 강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매우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미국역사가협회는 지난 2014년과 2017년에 이어 2020년 짐 다운스를 ‘저명 연구자DISTINGUISHED LECTURER’로 선정했다. 저서로 《남북전쟁과 재건 시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질병과 고통》 《게이 해방의 잊힌 역사》 《자유를 넘어: 해방의 역사를 전복하다》 등이 있다.
[연재 목차]
01. 한 노예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죽었다.
02. 군의관인 그의 임무는 노예들을 건강한 상품으로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것이었다.
03. 노예선에서 죽어간 수많은 노예들 덕에 위생관념에 눈을 떴다.
04. 식민지의 빈민, 전염병 연구에 핵심 역할을 했으나 역사에서 누락되었다.
05.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흰색 간호복 너머 숨겨진 질병 역학의 개척자
06. 남북전쟁 시기, 의사들은 흑인 아이들을 백인을 위한 천연두 백신 배양 도구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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