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서쪽에 있어 서산으로 부르는 산이 있다. 서울한양도성이 지나는 인왕산이다. 인왕(仁王)이라는 이름은 ‘어진 임금’이라는 뜻도 있고,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의미도 있다. 단단한 화강암 산이라서 거칠고 힘이 느껴진다. 이 서산 기슭에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숲 그늘 짙은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산길이다. 시작은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풍년과 나라의 평안함을 기원하던 사직단이다. 경희궁에서 옮겨온 황학정 활터와 태껸 수련장을 지나면 수성동 계곡이다. 겸재 정선 그림으로 유명한 수성동 계곡에서 그림과 실경을 비교해본다. 숲길은 굽어지고 휘어지면서 서산을 감고 돌아간다. 걸음 끝 시인의 언덕 아래에는 소박한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떠나기 전에
• 걷는 길에는 음식점이나 매점이 없다. 경복궁역과 윤동주문학관 주변에 음식점과 편의점이 많이 있다. 마실 물이나 간식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 화장실은 경복궁역, 사직단, 누상동 체육시설, 수성동, 옥인동 체육시설, 청운공원 체육시설, 서시정 부근, 윤동주문학관에 있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입구
버스
사직단 버스정류장
돌아오는 길
지하철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버스
자하문고개·윤동주문학관 버스정류장
길 찾아가기
3.7km | 1시간 20분 | ★★
➊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➋ 사직단
➌ 태껸 수련터
➍ 수성동
➎ 가온다리
➏ 청운공원 체육시설
➐ 윤동주문학관
인왕산 품으로 들다
걸음 처음에 만나는 곳은 사직단이다. 토지신과 곡식신에게 풍년을 기원하고, 백성의 평안함을 비는 곳이다. 왕궁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두었다. 종묘는 역대 임금과 왕비 위패를 모시는 왕실 사당이다. 왕조 시대에서 종묘와 사직은 나라를 지탱하는 두 기둥으로 국가 자체를 의미했다. 이처럼 신성한 곳을 일제는 일부러 훼손하고 공원으로 만들어버렸다. 현재 사직단은 복원 중이어서 전체를 돌아볼 수는 없다.
인왕산 언덕을 오르는 길 아래에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 듬직한 한옥, 황학정이 있다. 황학정은 경희궁 안에 있던 고종 황제 활터 정자였다. 일제강점기에 경희궁을 헐고 일본인 중학교를 세우면서 황학정도 제자리를 떠나 이곳으로 옮겨왔다. 황학정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 언덕을 오르면 널찍한 공터가 있다. 이곳이 조선 마지막 태껸꾼이 수련하던 장소라고 한다. 태껸 수련터를 지나 수성동 계곡까지는 그늘 좋은 숲길이 이어진다.
물소리 들리던 아름다운 골짜기
수성동(水聲洞). 물소리 우렁차고 아름다운 골짜기라는 말이겠다. 이 수성동을 흐르는 물이 청계천을 거쳐 한강으로 든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여전히 물길은 흐르지만 우렁찬 물소리는 없다. 그래서 수성동 골짜기 답사는 비가 제법 온 뒤가 제격이다.
진경산수화로 일가를 이룬 분이 겸재 정선 선생이다. 겸재 그림 중에 <장동팔경첩>이 있다. 백악산과 인왕산 아래 명소를 여덟 장 그림으로 남겼다. 그중 <수성동>이라는 그림이 있다. 서산 유람을 나선 선비들이 기다란 통돌 두 장을 맞댄 돌다리 ‘기린교’를 건너서 산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갓 쓴 선비 세 사람 뒤로 심부름하는 동자가 따르고 있고, 일행은 막 기린교를 건넜다. 앞선 선비가 뒤따르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자리를 권하고 있다.
수성동은 세월이 흐르면서 훼손되고,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변형되었다. 아파트는 40년 세월이 흐르면서 낡고 위험해졌다. 철거를 결정하면서 이곳 활용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고맙게도 오래전 풍경으로 되돌리는 결정을 내렸다. 그 오래전 풍경이 겸재가 그린 수성동 풍경이다. 덕분에 지금 수성동 모습은 그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 수성동 하늘 쪽으로 보이는 인왕산 바위가 겸재 그림 <인왕제색도>에서 보는 그 바위 봉우리다. 옛 그림 앞에 서서 현재 계곡과 비교해보는 즐거움이 생겼다.
시인의 언덕에 서면
숲길이 끝나는 곳에 청운공원이 있다. 이곳도 낡은 아파트가 있던 곳이다. 훌륭한 안목들 덕분에 이처럼 아름다운 공원이 되어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공원 안에 있는 보드라운 언덕이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윤동주(1917~1945) 시인은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인왕산 기슭에서 하숙한 적이 있는데 자주 이 언덕에 올라 시심을 다듬었다고 전해진다. 시인이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다’며 별을 헤던 언덕이 바로 이곳이 아닐지…….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고 뭉게구름 피어오르는 날, 시인의 언덕에 서면 누구라도 시인이 된다. 풍경은 달라졌겠으나 시인이 보던 서울을 우리도 본다. 세 갈래로 갈라진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남산과 도심을 한 프레임으로 잡으니 그것은 또 다른 진경산수화다. 시인의 언덕 아래 팥배나무 곱게 자란 곳에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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