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비행사, 서왈보
늦깎이에서 최초의 비행사로
동급생들이 모두 스무 살뿐인 학교에 서른넷 나이로 입학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 대기만성?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드림헌터? 아니다. 주변의 친절한 간섭꾼들은 아마 도시락을 싸 들고 쫒아 다니며 입학을 만류하고 하던 일이나 계속하라고 조언할 것이다.
아무리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서른네 살에 입학이라니……. 더구나 조혼 풍습이 남아 있어, 마흔이 되면 손주 보는 일도 흔했던 1920년대에 말이다. 그 시절 30대 중반의 나이는 지금과 사회적 무게부터 사뭇 달랐다.
그런데 중늙은이 취급을 받는 나이에 비행사의 꿈을 향해 과감히 도전을 실행한 사람이 있었다. 인생의 ‘리셋’ 버튼을 과감하게 눌러보고 싶은 순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일은 엄청나게 큰 용기와 결심을 필요로 한다. 알량한 자존심과 소소한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고, 주변 사람들의 근심 어린 걱정과 관심을 모조리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같은 현명한(?) 현실주의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특정 나이 때 도달해야 할 사회적 지위와 일정 수준의 성취가 ‘매뉴얼’처럼 강요되는 요즘 같은 시대라면 더욱 그렇다. 남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것도 모자랄 판에 십수 년이나 뒤처져 뭔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 돼버리거나 훗날 후회할 일을 하나 더 만드는 일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서왈보(徐曰甫, 1887~1926), 가장 늦게 시작했지만 결국 ‘조선 최초의 비행사’란 명예를 차지한 사람.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투비행사였다. 하지만 최초의 비행사를 ‘안창남’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안창남의 비행기, 엄복동의 자전거’가 당시 유행가의 노랫말로 쓰일 정도였으니, 서왈보는 당시에도 안창남에 비해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서왈보의 비행 이력은 안창남보다 10년 가까이 빠르다. 다만, 안창남이 경성에서 줄곧 활동했고 서왈보는 중국에서 비행 이력을 쌓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미래를 바꾼 일본군의 공개비행
서왈보는 평양(平壤) 태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일찍이 개화사상을 견지하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체신분 국장 통역사 자리를 얻으면서 세 살 된 서왈보를 데리고 원산(元山)으로 이주한다.
서왈보는 거기서 일본인 보통학교를 나온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평양의 ‘대성학교’를 졸업했다. 안창호가 설립한 대성학교(교장 윤치호)는 장래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할 일꾼을 길러내는 학교였다.
아무래도 서왈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일본의 지배 아래 있던 상황인지라 교육은 더욱 매섭고 엄격하게 이뤄졌던 모양이다. 서왈보의 군인 정체성은 병영과도 같았던 대성학교 시절부터 몸에 밴 습속이 자연스럽게 발현된 것이었다.
서왈보는 대성학교 졸업 후 1910년 안창호(安昌浩), 이갑(李甲) 등과 함께 시베리아로 건너가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학교를 함께 설립했다. 이후 중국 베이징과 몽골에서도 무장투쟁 독립운동을 펼치며 유명세를 떨쳤다.
그렇지만 국외에서의 독립운동이 순탄할 리 없었다. 인력과 자금이 부족하고 일본군과 싸울 무기도 확보하기 어려웠다. 서왈보는 귀국해 군자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모금이지 평양의 이름난 부자들을 한밤중에 몰래 찾아가 ‘육혈포(권총)’를 겨누고 강제로 빼앗는 방식이었다. ‘독립’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강탈’이라는 거친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서왈보는 조선에서 ‘공개비행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경성의 용산으로 향한다. 당시 용산은 일본 육군의 주둔지였다. 그곳에서 서왈보는 난생처음 비행기를 보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짓는다.
그날 조선 땅에서 처음 열린 일본군의 공개비행은 쌍엽기가 고도 200미터 상공을 고작 3분 정도 비행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서왈보는 우아하게 활공하는 비행기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맞서 싸워야 하는 제국 일본이 가진 ‘과학’과 ‘기술’의 정체를 비로소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이날 그는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 활용하겠다고 굳게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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