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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그녀를 그리다>

04. 가을이 되었네요

by BOOKCAST 2022.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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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들이할 때면
당신보다 걸음이 빨라 항상 앞서가는 나를 두고
늘 타박했지요.
걸음걸이 하나 못 맞춘다고,
마누라하고 걸을 때면 좀 느긋하라고...
그럴 때면, 난 그래, 그래, 그래야지 하면서
살며시 손을 잡고
당신 걸음에 내 걸음을 맞춰보기도 했지만
또 걷다 보면 어느새 내 걸음은 빨라져
당신보다 앞서 있곤 했지요.
가끔 뒤를 돌아보면
앞서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만치 느긋하게 걸어오는 당신이 거기 있었어요.
 
그렇게 느긋하게 내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던 당신,
 
그래서 늘 거기 있다고 생각했던 당신이
휭하니 앞서 가버린 후
늘 뒷모습만 보여주던 날들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걸음걸이 하나 못 맞추던 날들이
그렇게 후회될 수 없어요.
 
가을이 되었네요.
쨍한 가을 햇살 속, 저만치 앞서 걸어가는
당신 뒷모습만이라도 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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