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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세이/<그녀를 그리다>

06. 홀아비 (마지막 회)

by BOOKCAST 2022.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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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엘 다니던 당신은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지.
딸이 아주 어렸던 시절.
 
나는 일요일이면 딸을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지.
아동극을 보러 간다거나
한강 고수부지로 나들이를 간다거나
그냥 백화점 구경을 가기도 했지.
좀 더 큰 후에는 서점엘 데리고 나갔다가
퇴근하는 당신을 만나 함께 저녁을 먹기도 하고.
 
일요일마다 혼자 딸을 데리고 나가는
나를 보며 아파트 주민들은
홀아비인 줄 착각을 했고,
 
너무 젊어서 홀아비가 된 나를
불쌍히 생각한다는 얘길 전해 듣고
우린 한참을 웃었지.
 
20년도 넘은 세월이 지난 후,
어느 날 당신은 떠나고
난 진짜 홀아비가 되었어.
매주 어린 딸과 함께 나가던 그땐
내가 그의 손을 잡았지만,
이젠 가끔 딸이 내 팔짱을 끼기도 하지.
양 갈래로 곱게 머리를 땋은 딸이 아니고
이젠 서른을 훌쩍 넘긴 딸이
내 팔짱을 끼면
내가 그의 손을 잡고 나가던 때처럼 좋기도 하고
 
가끔은 어색하기도 해.
당신과도 팔짱을 낀 적이 많지 않았으니까.
 
이제 진짜 홀아비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람들은 날 불쌍히 생각하지 않아.
함께 외출을 하는 우릴 보며
참 좋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눈빛을 보면 알잖아.
 
그래도 가끔은
당신 혼자 집에 두고
둘만 외출을 하는 거 같아 미안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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