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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 시킨 동태탕 위에
쑥갓 몇 잎이 얹혀 나왔네요.
쑥갓 향은 참 특이하지요.
당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그 쑥갓을,
쑥갓 향기를
오늘, 오랜만에 다시 만나네요.
우린 주말농장 텃밭 한편에 쑥갓도 길렀지요.
쑥갓만큼은 모종이 아니라 씨를 뿌리겠다고
고집하던 당신.
당신이 떠난 후, 나는 그 알량한 농사일도
그만두었어요.
따뜻한 봄 햇살 속에 씨를 뿌리던 당신 모습,
쑥쑥 자라는 채소들을 보며
‘아이구, 고마워라’며 연신 감탄하던 당신의 목소리,
뜨거운 여름 햇살 속에서 김을 매고 있노라면
그늘에 앉아 ‘그만 하고 오라’며 흔들던 당신의 손짓,
그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그곳에서
나 혼자 덩그러니 채소를 가꾸는 일이
부질없어진 것이지요.
오늘은 당신과 마주한 일요일 저녁상이 아닌,
어느 식당에서 쑥갓 향을 만나게 되었네요.
수확한 쌈 채소로 차린 저녁상 앞에 앉아 당신은
늘 같은 얘길 반복하곤 했지요.
‘여보, 난 쑥갓 향이 참 좋아.’
오늘은 고백해야겠네요.
나는 사실, 당신과 결혼하기 전엔
쑥갓 향이 참 싫었다는 걸.
당신이 떠난 후, 몇 차례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이 오지만 나는 다시 땅을 일구어
씨를 뿌리고 김을 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던
쑥갓 씨를 다시 뿌리고 가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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